상단영역

본문영역

지난노보

제목

[news cliping] (칼럼) 선거에 관한 부끄러운 기억들

닉네임
SBS본부
등록일
2000-04-04 01:00:00
조회수
1363
(칼럼) 선거에 관한 부끄러운 기억들


그러니까 벌서 13년이 지났다. 그때, 1987년에 개인적으로는 대학에 입학한 해이기도 했던 그해에 이 나라의 국민들은 자기의 힘으로 대통령 직접선거라는 것을 쟁취해 내는 감격을 맛보기도 했다. 선거라는 시민의 당연한 권리를 얻어내기까지 기 십년의 세월동안 아 나라 국민들이 겪어야 했던 유신과 군부독재의 질곡을 일일이 거론하지 않는다 해도 오랫동안 냉소하고 체념해왔던 권리를 되찾는다는 것은 우리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벅찬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후, 야당후보의 단일화가 실패로 돌아갔고, 정권은 생명을 이어갔으며 부당한 특혜를 누리던 자들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고, 직선제만 얻어내면 다 잘될 것 같았던 희망은 그래봐야 할 수 없다는 무표정한 냉소로 되돌아갔다. 부조리는 지속돠고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몇년 후, 세번의 총선이 있었고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있었고 두 번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선거에 임할 때마다 이번만큼은 뭔가 다르리라는 소박한 기대를 품었던 시민들은 반복되는 기대와 그 기대에 대한 배신과 그 배신을 겪게 만든 정치인이라는 집단자체에 대해 진저리 칠만큼 환멸을 느끼게 됐다. 날 선 감시의 눈길과 치열한 참여정신이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받는 현실 속에서 정치권은 부패를 더해갔다. 그런 것이 간간히 대형 비리사건으로 곪아 터져도 철저한 단죄는 이뤄지지 않았고 다시 그들은 제자리로 돌아와 군림해 왔다.
그리고 또 선거를 맞이하게 됐다. 이제는 정말 선거 같은 것으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여론 조사에 의하면 선거에 관심 없다고 답하는 유권자가 전체의 40%에 달하고 있다. 이유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십 수년, 아니 멀게는 4.19혁명과 그에 뒤이은 5.16쿠데타부터 수십년 동안 국민의 삶의 질을 좌우할 중요한 결정들이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해져 왔고, 그에 따라 세월은 흘러왔기 때문이다.
물론, 한번은 생각해 볼일이다. 이제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외면해도 떳떳할 만큼 제대로 사람을 뽑았는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의 신분을 획득한 사람들이 감히 제멋대로 전횡을 부릴 수 없을 만큼 삼엄한 눈길로 그들을 감시해 왔는지, 지역감정을 비난하면서도 우리 지역, 우리 문중, 우리 학교 사람에게만큼은 너무 관대하지 않아 왔는지, 그래서 그런 부조리에 기생하는 자들을 스스로 너무 키워놓지는 않았는지. 그러나 그런 말을 하기에 앞서 대중매체를 일터로 삼고 있는 우리에게 던져지는 뼈아픈 질문이 있다. 우리는 부조리의 온존을 돕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지는 않았는가.
부끄럽게도 그것은 사실이다. 고비때마다 진실을 알려야 할 때 알리지 못하고 ,잘못된 현실을 바로 잡으려는 방향을 제시하기 보다는 기득권의 눈치를 살피느라 그들의 입맛에 맞게 여론을 이끌어 왔으며, 결국 이 나라의 착한 백성들이 제 나라에서 살기 싫어 등지게 되어 가는 세상을 만드는데 커다란 기여를 한 것이 방송과 신문을 포함한 이 나라의 언론이 아닌가.
선거가 이제 열흘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큰 기대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선거에 관한 사실을 사실대로 알리고 선거 후에도 당선된 이들에 대한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실타래처럼 얽힌 이 나라의 부조리의 고리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시작이며 대중매체에 몸담고 있는 우리에게 남겨진 일이다.

박진홍
편집위원
작성일:2000-04-04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