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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갈무리] (勞說)사직서와 희미한 'SBS 드림'

닉네임
SBS본부
등록일
2000-08-09 01:00:00
조회수
1309
(勞說)사직서와 희미한 'SBS 드림'


한때 '친구여 왜 떠나려하는가...'라는 가사의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다. 70년대 말 해외이민 붐이 극에 달할 때, 무작정 고국을 뜨려는 친구를 만류하는 노래였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낯선 땅으로 떠나는 친구에게 장도를 축하한다는 말으 하기보다는 '우리의 우정을 되새기며' 이별을 하지말자고 권유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절규하는 듯한 남자가수의 목소리는 독재정권의 암울한 현실을 피해 해외로 삶의 터전을 옮겨가는 친구를 적극 만류할 수도 없는 시대의 아픔을 반영하고 있었다.
몇몇 사원들이 회사를 그만 두겠다고 사표를 냈다. 인터넷 방송등 새로운 활동무대를 찾아 나서는 동료도 있고 아예 방송과는 담을 쌓고 학업을 계속하겠다며 유학을 떠나는 동료도 있다. 회사측의 설득으로 사표를 철회한 경우도 있지만 이미 또다른 직장에서 터를 잡고 새로운 꿈을 펼쳐나가는 경우도 있다.
회사를 떠나려는 사원들과 직접 면담을통해 들어본 이직사유는 대체로 'SBS에서는 희망이 안보여서...'라는 것이다. 이 조직에서는 희망이 안보이기 때문에 자신의 성가를 인정해주는 조직을 찾아 모험을 걸겠다는 얘기다. 대개 과감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수 있는 사원들은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경쟁력을 갖춘 구성원들이 희망이 없다고 여기는 조직은 경쟁력도 희망도 없는 조직이다. 그렇다면 SBS의 근무여건이 경쟁력있는 사원들에게 절망을 안겨줄 정도로 열악한가? 두말없이 'NO'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SBS는 후발주자로서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짧은 시간안에 나름대로의 경쟁력을 갖춘 공중파로 당당히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왜 정작 조직내부에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터져 나오고 있는가?
장기적인 비젼의 부재가 원인일수 있다.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업무의 효율성에서 SBS는 타사에 비해서 우수하다. 그러나 과중한 업무강도와 시청률 압박속에서 대부분의 사우너들은 미시적인 세계에 머무르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나를 둘러싼 주변의상황에만 집착할 뿐 거시적인 안목을 가질 필요도 여유도 없다. 실적주의에 기초한 개개인의 시야 축소가 장기적인 비젼 부재의 문화를 SBS에 뿌리내리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직 전체의 거대한 흐름에 인생을 걸고 새로운 승부수를 던지는 풍토가 아예 싹도 틔우지 못하는 것이다.
학연 지연 출신사에 기초해 조직 내부에 독버섯처럼 도사리고 있는 배타적 패거리 문화도 주요한 원인이다. 대부분의 사원들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가장한 인사평가의 이면에 뿌리깊은 정실주의가 온존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런 풍토는 '새로운' 조직에서 '업무'로 맺어진 동지애를 거부하고 '옛날'의 '계급적 특권'에 기초한 낡아빠진 패거리 문화를 확대 재생산한다. 퇴행적인 조직문화 속에서는 오만한 보스와 비겁한 추종자들만이 날뛴다. 줄을 대지 못한 신진들은 소속감을 갖지 못한 채 방황하거나 좌절감을 안고 조직을 떠날 뿐인 것이다.
SBS가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자명하다. 눈앞의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장기적인 투자를 장려해야 한다. 1년생 작물을 심기보다는 몇 년간의 해거름을 거친 뒤 열매를 맺는 튼실한 과실수를 심어야 한다. 아울러 조직문화를 왜곡하는 위장된 충성파들이 터잡은 자리를 건전한 신진들에게 물려 줘야한다. 지난 10년간 거친 황무지 위에 '과거의 인맥'으로 SBS라는 조직을 구축한 그들 나름의 공로는 인정한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역할은 끝났다.
'동지여, 우리 함께 SBS 드림을 꿈꾸어보자'라는 목소리가 초라한 절규가 되지 않길 기대해 본다.
작성일:2000-08-09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