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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갈무리] '저질 상업방송'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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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본부
등록일
2000-08-09 01:00:00
조회수
1358
'저질 상업방송'으로 가는 길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늘 위태위태하다고 느꼈는데 기어코 외부로부터 '선정적,폭력적'이라는 뼈아픈 지적을 받았다. 방송위원회의 지적은 두말 할 나위 없이 타당하다. 한번 생각해 보자.


주말 저녁 온 가족이 TV앞에 함께 앉아있는 시간에 아슬아슬한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성 출연자가 꼭 나와야 하는가? 나와서 자극적인 몸짓을 해야 하는가? 프로그램은 반드시 수영장에서 만들어야 하는가? 우리가 내리는 답은 "그래야 한다"이다.
적어도 시청률의 노예가 되어 있는 지금 상황에서 그것이 가장 쉽고 빠른 길이다. 젊고 예쁜 여성을 등장시켜 최대한 노출시키면 시청률은 올라간다. 선정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도 있지만 "시청률이 형편없다"는 내부 압박보다는 낫다.
한 조합원의 말을 빌자면 "이보다 더 무서울 수 없는 숫자"가 시청률이다.
문제는 시청률 강박관념이 오락이나 일반 프로그래을 넘어 뉴스 프로그램까지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는데 있다.

'뉴스추적' 선정적 아이템 일색

지난달 11일 방송된 대표적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뉴스추적을 보자. *라스베이거스 도박 *지하철 성추행 *인터넷 성인채널을 다루었다. 모두 자극적인 소재다. 왜 이 아이템을 선정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뉴스추적팀의 한 관계자는 "다른 무엇보다도 시청률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말 비교하기 싫지만 같은 날 경쟁사의 다른 시사프로그램에서는 '국가보안법 철폐 문제'를 다루었다. 그 결과 뉴스추적이 시청률에서 1%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다.
하지만 이런 걸 두고 승리라고 할 수 잏을까? 시사 프로그램이 추구해야 할 진지한 자세를 잃어버리고 시청률에 목을 맨 결과는 '대표적인 선정적 사례'로 뽑힌 것이다.

한밤의 TV연애 주 2회 편성까지

뉴스나 시사가 아닌 다른 쪽에서는 아예 시청률 지상주의가 공공연하다.
일일이 거론할 수도 없지만, 최근 주 1회에서 수, 목요일 이트로 확대 편성된 <한밤의 TV연예>도 걱정스럽다.
경쟁사 프로그램을 잡기 위한 맞불, 확대 편성인데 제작진이 보강됐다고는 하지만, 그나마 저널리즘식 속성을 가미한 '괜찮은 연애 프로그램'의 명성이 실추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왜 편성시간을 늘렸냐는 시민단체의 지적에 회사측은 "시청자의 요구를 바탕으로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장기간에 결쳐 준비한 것"이라고 답했다.
우리가 봐도 좀 민망한 답변이다.) '뉴스추적'과 '한밤' 두가지를 예로 들었지만 다른 실무진들도 마찬가지다.
한 PD의 말을 빌리면 "시청률!하면 자다가도 벌떡 깬다" 외부로부터 뼈아픈 지적을 받긴 했지만 여전히 속으로는 '시청률 떨어져봐라. 우리 입장이 된다면 시민단체들도 저런 소리 못할 걸....'하는 자기 만족적 변명을 하고 있다. 게다가 회사측은 이런 분위기는 부추긴다.

사내 담화문 공허한 원칙론만

선정성,폭력성 시비로 한차례 홍역을 치른 다음 송도균 사장은 사내 담화문을 발표했다.
"방송의 공익성과 책임을 인식하고....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은 기획단계에서부터 자제...."하라고 지시했다. 사장의 담화문 속에 "시청률을 의식하지 말고..."라든지 "너무 의식하지는 말고"라는 문구가 담기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까?

먼저 사내 통신망 1일 시청률 게시 없애야

그러나 솔직히 사장의 담화문을 읽고 "그래 시청률보다 방송의 사명과 공익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사원은 단 한명도 없었을 것이다.
한 차례 선정성 시비의 태풍을 맞기는 했어도 여전히 시청률은 절대절명의 과제이다. 목표 시청률은 아귀처럼 남아있다. 또 경영진들은 인내심이 없다. 시청률이 떨어지면 1~2주를 참지 못하고 프로그램을 없애벌인다. 오줄하면 "높은 시청률을 낸 제작진이 낮은 시청률의 제작진을 먹여 살린다"는 해괘망측한 궤변까지 나돌까! 태풍을 맞기 전과 달라진 것은 없다.
벗기긴 벗기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 당분간은 조금 덜 벗길 뿐이다. 달라지기 위해서는 먼저 사내 통신망에 올라 있는 일일 시청률부터 없애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나친 '시청률' 의식 중독 이제 그만

이 무서운 숫자가 맹리 아침부터 기자와 PD의 건강한 의식을 갉아먹고 있지 않은가 반성해보자.
벗기지 않고도 , 선정, 폭력이 아니고도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선정과 폭력은 마약과 같은 것이어서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줘야 만족시킬 수 있다.
이 추세라면 여성의 상반신 정도 드러내지 않으면 시청률이 떨어지는 사태가 올 지도 모른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반성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은 우리가 그토록 듣기 싫어하는 저질 상업방송으로 가는 지름길일지도 모른다.

김도식
사무국장
작성일:2000-08-09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