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를 바라보는 회사의 시각이 걱정된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부장이나 국장급 간부들의 시각이 특히 그렇다.
편성규약을 담당하는 간부가 "제작 종사자의 대표를 반드시 노조로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발언을 하지 않나, 노사 업무에 정통한 간부가 "노조가 회사의 문서를 다 봐야 할 필요가 있냐"는 발언을 하지 않나...노조가 출범한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일부 부서에서는 부서장 눈치 때문에 노조 가입을 하지 않는 실정이다.
국장이나 부장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노동자가 아니고 마치 사용자인양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회사 구성원은 사용자와 노동자로 대별된다. 사용자는 회장과 사장, 임원이다. 나머지는 전부 노동자다. 국장과 부장은 당연히 노동자이고, 엄밀히 따지면 노조 가입대상이다. 불필요한 마찰을 막기 위해, 또 불편한 간부들의 입장을 헤야려 노조에서 편의상 노조 가입대상이 아닌 쪽으로 단체엽약을 체결하는 것 뿐이다. 실제로 부장급 간부들이 노조원인 회사도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이란 사실 국장과 부장까지 포함한 사원들의 대표조직이다. 노조를 애써 무시하거나 노조 활동을 백안시하는 간부들은 이런 기초적인 사실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사원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것이다. 회사가 부당하게 사원들을 정리해고하겠다고 나설 때 노동자들의 결집된 힘으로 이를 막는 것이다. 노조가 임단협 투쟁을 통해 임금을 올리고 근로조건을 개선하면 노조원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국장, 부장도 고스란히 같은 혜택을 누린다. (이런점을 잘 알고 있는 이부 간부들은 임협이 끝났을 당시 "수고했다"며 노조발전기금을 흔쾌히 내기도 했다.) 회사가 정리해고에 나서면 누구부터 자르는가? 당연히 국장, 부장을 포함한 '무거운 사람'들이다. 국장, 부장은 또 누구인가? 당연히 우리의 미래이다. 간부들도 불과 얼마전까지 일반 사원이었고 지금은 간부 노동자일 뿐이다.
부장급 이상 간부들이 처한 상황을 몰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간부들도 그들 나름대로 회사에 잘 보여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도는 지켜야 한다 (임원이 되기 위한 경쟁일 수 있지만 승자는 언제나 소수일 뿐이다.)
"제작 실무자의 대표를 노조로 볼 수 없다"는 말은 노조가 무엇인지, 자신이 누구인지를 전혀 모르고 한 소리다. 노조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의도도 담겨있다. 노조를 무시하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인 줄도 모른채, 만약 이 말을 한 간부가 지금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겠다면 임금이나 근로조건에 대한 협상을 따로 하기 바란다. 솔직히 우리는 그렇게 착각하는 사람까지 챙겨가며 회사와 맞설 여력이 없다.
노조가 모든 문서를 다 열람할 필요가 있느냐는 발언을 한 간부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경영상태를 비롯해 회사의 업무사항을 노조에 알려야 한느 것은 법에 규정된 의무사항이다. 법을 모르지는 않을테고 그렇다면 딴지를 거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간부들에게 진심으로 당부한다.노조를 '부하 직원들의 조직' 정도로 보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려는 '과도한 충성심'을 자제하기 바란다. 노조가 허약해질 때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헤야려보기 바란다. 작성일:2000-08-30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