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럽게 한 마디 해야 하겠다. 산별 전환 여부를 결정할 투표를 유보하겠다고 한 지난 21일 대의원대회의 결정은 실망스럽다. 그 결정은 얼핏 보기에 '유보'가 아니라 산별'불참'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뽑은 대의원들이 내린 결정이므로 사실 뒤집을 수도 없다. 하지만 그동안 노조 활동에 마음으로나마 지원을 해온 조합원으로서 항변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한다.
노조 집행부나 대의원들처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산별에 참여하는 것이 결코 나쁠리가 없다. 원래 노조는 강해야 하는 것 아닌가. 흩어진 힘을 하나로 모으자는 것인데 이런 전런 이유를 찾으면서 안가겠다는게 지금 우리 노조의 모습인것같다.
노조 집행부의 설명대로 2002년부터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로 우리뿐 아니라 다른 노조의 힘도 지금보다 훨씬 약해질 것이다. 전체 노동운동의 힘이 약화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 반면 사용자들의 힘은 훨씬 강해진다. 물론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노동자들이 비교적 목소리를 크게 내니까 사용자들이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만약 노동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면? 다시 80년대 이전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산별만이 살 길이다"고 외치던 노조 집행부가 갑자기 입장을 바꾼 배경도 궁금하다. 노조에서 띄운 글을 보면 'SBS 노조의 조직력 약화'를 불참의 이유로 나와 있는데 어떤 근거에서 노조의 조직력이 약화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지금 우리 회사의 분위기는 시청률 드라이브 정책으로 우리 현업자들의 근로조건을 악화시키고 있다. 산별노조로 뭉치면 적어도 이런 점은 조금씩 고쳐질 것이다.
'민영방송에 대한 몰이해'도 불참의 이유로는 선뜻 이해가 안간다. KBS나 MBC가 우리 입장을 이해하지 못해 '구박'한다면 산별노조 틀안에서 당당하게 비판하면 된다. K나 M과 하나의 노조가 된다면 그들이 우리를 과거처럼 쉽게 구박하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출판사나 인쇄회사 조합원들과 함께 산별노조를 만드는 이유에 대해서는 나도 의문을 갖고 있다. 이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것 같고, 현실적인 임금 격차도 나중에 문제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작은 돌멩이가 큰 길을 막지는 못한다. 노조가 결정을 번복한데는 무엇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닌가?
노조 집행부는 대의원대회의 결정이 '유보'이지 '불참'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유보 결정을 재고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아니 무엇보다도 산별노조에 참여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조합원들한테 직접 물어야 하는 문제이다. 투표 결과가 내 뜻과 다르게 나올 수도 있지만, 조합원들의 투표할 권리조차 빼앗아버린 대의원대회의 결정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작성일:2000-08-30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