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성규약을 만들자는 노조의 요구에 대한 회사의 태도를 보면 정말 답답하다. 노조에서 편성규약안을 제시한 지가 한 달을 훨씬 넘었는데, 담당 부서인 편성팀은 말이 없다.
노사는 지난 8월29일 편성규약제정을 위한 공정방송협의회를 열었다.
편서규약 만들자고 제의한 지 한참이 지난 시점이었다. 노조는 올해 초부터 세미나도 두차례 열고 나름대로 이 자료 저 자료 찾아가며 편성규약안을 만들어 회사측에 제시했지만 당시 편성팀은 말 그대로 빈손으로 회의에 나타나는 무성의를 보였다. 기가차는 일이었지만 "편성규약안을 만들기위한 실무팀 구성을 준비하고 있다"는 회사의 말을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자, 이제 또 다시 한달이 지났다. 회사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제작 현장의 실무자를 중심으로 실무팀을 구성해 회사 족 안을 만들겠다"는 약속은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알기로 편성팀은 실무팀 구성을 위한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노조가 몇 달째 "편성규약 만들자"고 요구하고 있지만 편성팀의 반응은 "짖어라, 나는 간다"는 식이다. 속마음이 그렇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솔직하게 나왔어야 했다. 그것이 오히려 당당한 태도다. 우리도 회사 편성팀이 왜 저리도 답답한 행보를 하는지 짐작할 수 있기는 하다. 아마도 노조가 편성규약안에 본부장 임면동의제와 같은 '감당하기 어려운' 조항을 넣었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윤세영 회장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본부장 임면동의제 조항을 포함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노조는 본부장 임면동의제가 포함된 편성규약안을 제시하면서 이 조항이 회사의 인사권을 침해하자는 의도가 아니라 "구성원 대다수가 반대하는 인사라면 본부장을 맡는게 적절하지 않으며, 이 제도가 때로 '인의 장막'에 갇힐 수 있는 경영진의 눈과 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설명했다.
그러나 편성팀은 노조의 이 노리가 옳은 말인지 아닌지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오직 '윤회장이 싫어하는 문제를 왜 우리가 떠맡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뿐인 것 같다. 이 것이 우리 회사의 현실이다. 아무리 정당한 이유를 들이대도 단 한마디, "회장의 심기를 거스를 지도 모른다"면 끝이다.
편성팀에서 이 문제가 감당 불가능이면 감당할 수 있는 다른 부서나 더 높은 책임자에게로 넘겨야 한다. 편성팀으로서는 부끄럽겠지만 그 것이 회사 전체를 위하는 길이다. 개정 방송법에 따라 편성 규약은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규약을 만드는 주체는 회사인데 아직까지 한 일이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노조에서 몇 달을 고민해서 안을 만들었다. 아무 하는 일 없이 윗사람 눈치나 보고 다른 회사 핑계나 댈 생각이라면 차라리 그게 낫다. 작성일:2000-10-05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