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나이가 들면 1년에 한두번씩 민방위 소집통지서라는 것을 받게 된다.
대부분 날짜나 확인하고 눈여겨보지도 않는 그 종이 한켠에는 민방위 훈련에 가져올 준비물에 대해 나열해 놓았다. 나도 솔직히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간편복, 민방위 모자, 완장, 기타 등등....이랬던 것 같다. 물론 어느 누구도 민방위 훈련에 참가할 때 이런 것들을 가져가지는 않는다. 왜? 귀찮기도 하거니와 검사를 안 하니까.
그러나 딱 한사람, 바로 박수택 차장만은 달랐다. 회사 안에서 민방위 훈련이 있는 날이면 그는 어김이 없었다. 삼각형 3개가 겹친 모양의 민방위 마크가 반짝이는 모자와 완장을 차고 나타났다. 귀찮다는 것,검사를 하고 안하고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왜? 규정은 규정이니까 확실히 그는 보통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다.
언행일치(言行一致)!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어찌보면 당연한듯한 이 말이 실제로는 참으로 지키기 어렵다. 누구나 말로는 만리장성도 쌓을 수 있고, 도덕군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자신의 행동으로 드러나는 일에 있어서는 대부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나와 아내는 그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가 SBS 나이트라인을 진행하던 시절, 밤늦은 시간까지 TV전원을 끄지 못했던 이유는 박수택 앵커가 오늘은 어떤 클로징멘트를 던질까 하는 기대때문이었다. 뉴스앵커의 말투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듯한 그의 억양은 오히려 시청자들과 대화하는 것 같아서 편안했고(외모도 이웃집아저씨처럼 편안하지 않은가?) 하루를 정리하는 촌철살인의 멘트는 매우 공감이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 좋은 말이야, 옳은 얘기지" 라고 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말이니까 그렇게 하는거지 그게 쉽겠어?"하면서 넘겨버렸던 것 같다. 그러나 박수택 선배는 역시 달랐다. 내가 그와 함께 일했던 것은 지난 98년 보도국에 근무할 당시였다. 그는 자신이 방송에서 했던 말들을 일상 생활 속에서도 지켜가고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결코 말로만 만리장성을 쌓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남달리 환경에 관심이 많은 그는 커피를 마시고 난 종이컵에 담배를 버리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무수한 잔소리에도 고쳐지지 않자 어느날 기자들의 책상위에는 조용히 재떨이가 한개씩 놓여있었다. 그가 사재를 털어 사다 놓은 것이었다. 이 밖에도 그가 출입처에 나갈 다시 촌지와 접대를 없애기 위한 도시락 일화는 너무 유명하니 생략하기로 하자. 이런 박수택 선배가 노조 위원장에 출마하신단다. 평소 윗사람에게 할 말은 하고야 마는 그의 성품으로 비춰볼때 자못 기대가 크다. 그가 가진 장점은 소신의 강직함과 이에 부합하는 실천력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 나아가 탁월한 협상력만 발휘할 수 있다면 새로운 노사문화를 만들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박수택 선배를 존경하는 후배의 한 사람으로, 그리고 노조원의 한 명으로서 그의 출사표에 아낌없는 박수와 지원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