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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갈무리] (勞說) 10년의 용기, 10년의 답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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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본부
등록일
2000-12-27 01:00:00
조회수
1276
(勞說) 10년의 용기, 10년의 답답함


할렐루야 기도원 맹신도들의 저돌적인 공격을 막아낸 뒤 SBS는 "용기있는 방송"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용기를 만용과 진짜 용기로 구분하자면, 할렐루야 신도들의 행위는 만용이요 이를 막아낸 SBS의 힘은 용기다.
과거 순복음교회 신도들의 극성스런 불법주차를 지적하고, 사이비 종교집단 JMS를 고발하면서 쌓인 힘이 이번에 나타났다. 그렇다. 지난 10년,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성공했지만, 쉬지 않고 노력한 것이 힘으로 모였다. 10년의 공력이라고 해도 좋고 10년의 자신감이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답답함을 느낀 조합원들도 적지 않다. 반론권 보장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15분이나 준 것은 좀 지나치지 않느냐는 지적에서부터 뉴스 등을 통해서 할렐루야 기도원측을 좀 더 적극적으로 압박했어야 하지 않았냐는 지적이 있다. 전반적으로 잘 했지만, 무언가 자신감이 부족한, 답답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최근 한 매체비평지가 "SBS는 민감한 사안을 적극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눈치를 본다"며 "한시간 빠른 뉴스라더니 하루 늦은 뉴스만 보도하더라"고 꼬집은 것도 매우 아프다. 많은 주목을 받았고 그 떄문에 많이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 눈치보기에 익숙한 것도 사실이다.
편성규약 제정 문제만 해도 그렇다. 노조가 몇차례의 세미나까지 열어 편성규약안을 만들고 회사측에 "규약을 제정하자"고 반년동안 요구해도 아직껏 묵묵부답이다. 외부에 공개하기도 부끄럽지만 사실은 아직도 편성규약안조차 마련하지 않은 듯 한다.
왜 그럴까?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KBS, MBC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눈치를 보는 것이다. 이제 KBS에서 노조가 약화된 틈을 타서 '편성규약 제정의 취지가 뭔지도 모르는 편성규약'을 만들었으니 우리도 "비슷한 규약을 만들자"는 안을 들고 나올지도 모른다.
방송법을 개정하면서 편성규약을 강제적으로 만들도록 한 목적이 무엇일까? 모든 공중파 방송이 나름대로 공정방송을 위한 규약을 만들어 놨는데 또 비슷한 규약을 만들라는 이유는 분명하다. 회사가 '멋대로' 해 온 방송을 그 구성원들과 '함께' 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방송 가이드라인 같은 선언적 수준이 아니라 공정 방송을 제도적으로 담보할 실천적 규범을 만들라는 뜻이다.
비록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를 만들겠다는 노력은 입법 과정에서 좌절됐지만 그렇다고 편성 위원회를 만들지 말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회사측은 '고유한 편성권'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런 편성권은 애초부터 없다. 백번을 양보해 있다고 하더라도 견제 장치는 필요하지 않은가!
다른 기업이 꺼리는 성과배분제를 도입한 회사다. 노조가 참여하는 편성위원회를 만들어 방송을 노사가 다 함께 기쁜 마음으로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민감한 사안이면 눈치부터 보는 답답함은 10년이면 족하다. 이제는 편성규약 같은 문제를 SBS가 용기있게, 기왕이면 시민 사회 단체로부터 박수를 받는 쪽으로 풀어나갔으면 한다. 방송 10년 공정방송의 선두주자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작성일:2000-12-27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