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높이 날지 못하는 건 연료가 떨어졌거나 날개와 동체에 이상이 있거나 조종사에게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난기류로 기체가 뒤흔들리는 경우도 있다. SBS 경쟁력 저공비행의 원인도 마찬가지다. 아이디어, 창의력이 고갈됐거나, 아이디어가 있어도 띄워 올려 실행할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거나, 종사자와 조직 전반에 피로가 닥쳐 제 역량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창사 10년 고속 성장 가도를 숨가쁘게 달려온 후유증이기도 하다. '소수정예'의 구호 아래 변변한 휴식이나 재충전 없이 정신력과 체력을 소모한 결과다.
SBS에 대한 외부의 인식도 개선되려면 아직 멀었다. 창사 이래 가볍고 요란한 연예 오락채널이란 이미지가 굳어진데다 보도는 어딘지 모자라고 연약하다는 인상을 여전히 씻지 못하고 있다. 국가 사회적인 주요 쟁점을 되도록 피해가고 권력이나 힘센 집단의 눈치을 지나치게 살핀다는 오해도 자초해 오히려 대다수 시청자들의 비위를 거스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SBS가 본격 민영방송시대를 연 뒤로 한국 방송사에 오래 남을 발자국을 여럿 찍은 것은 사실이다. 우리에겐 '모래시계'나 '그것이 알고싶다' '생명의 기적''시화호 오염'과 '한국에도 미군 고엽제' 특종보도 같은 빛나는 훈장이 있다. 그러나 시청자 대중은 냉정하다. 볼 거리 들을 거리가 많은 정보 홍수 시대에 우리의 피땀을 오래 기억해 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실수만을 오래 기억할 뿐이다.
SBS의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되찾아야 한다. 그러나 어두운 밤, 혼인잔치 앞두고 등불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는 신부에겐 신랑이 찾아오지 안는다. 우리는 겸허하게 스스로 돌아보고 모자란 것은 서둘러 보충하고 잘못된 것은 과감히 고쳐야 한다. 먼저 경영진은 시청률 끌어올리기 같은 단기적인 목표에 매달리기 보다 더욱 장기적이고 높은 차원의 전략을 구상해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창의력의 원천인 사원들이 SBS인으로 귀속감을 잃지 않도록 사람을 아끼고 장기적으로 사람에게 투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젊은 사람들의 창의와 활기가 조직 전체로 두루 퍼지는 걸 누가 가로막는지,조직의 혈관과 신경망에 결함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간부들은 자리보다는 일에 중점을 둠으로써 방송계에 만연한 '애늙은이' 현상을 극복하고 방송계에서 쌓은 경험을 살려 현장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현장 사람들이 신나고 보람있게 뛸 수 있도록 여건과 분위기를 조성하고 실탄과 병력이 모자라면 제때 지원요청을 하는 것도 임무다. 웃전의 심기만 헤아린 나머지 '윗분들은 돈이나 사람 더 달라는 얘기 싫어한다'고 아래의 고충을 모른 체 마른 수건 쥐어짜기로 일관한다면, 이는 심각한 직무유기다. 회사에 해악을 끼치는 행위다. 자리를 탐하고 현업인들을 구박하고 간섭하는 걸 능사로 삼고 위만 바라보는 간부들은 차라리 일찍 회사를 떠나는 것이 낫다.
노조원을 중심으로, 사원들은 각자 SBS의 기둥이라는 각오로 심기일전할 것을 당부한다. 우리가 창의와 활기를 내지 못하면 SBS호는 땅에 처박히고 만다. 바르고 빠른 보도, 유익한 교양, 수준 높은 연예 오락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야 할 과업 행진의 선두는 결국 현장 사람들의 몫이다. 우리가 회사에 돈을 벌어준다는 자신감으로 당당하게 뛰자. 프로그램이나 업무 개선 아이디어가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회사에 제안하자. 노조의 창구를 활용해도 좋다. 위에서 찍어서 주문하는 과업을 받고 '총 맞았다' 자탄하지 말고 스스로 과녁을 잡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SBS의 경쟁력을 회복하는 과업엔 노와 사, 현업과 지원부서, 본사와 분사 조직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끝으로 SBS의 구성원들은 우리가 진정으로 위할 대상은 바로 전파의 주인인 시청자 대중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기울인 노력을 보고 경쟁력 여부를 판정해 줄 분들은 다름아닌 시청자 대중이기 때문이다. 작성일:2001-03-06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