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위보고서)"국민과의 대화"가 박탈한 시청자 선택권 얻은 것:對정권 아부
잃은 것:신뢰, 경쟁력
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공중파 방송이 대통령 관련 행사에 일방적인 도구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는 노조의 우려와 지적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3월 1일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중계방송을 강행했다. 방송 3사가 - 유선방송까지 포함한다면 YTN,MBN,K-TV까지 포함한다면 모두 6개 방송사가- 휴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동안 국민들에게 <국민과의 대화>를 보도록 강요한 것이다.
중계 채널은 대통령 전유물?
시청자들의 반응은 모두가 잘 알 것이다. 시청자들은 정권 담당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에 올라 있음은 누구보다도 우리 방송인들이 잘 안다. SBS의 임직원조차, 심지어 가족들로부터 "왜 방송 3사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프로그램을 내보내야 하느냐"는 힐난에 시달려야 했다.
노련한 정치인들이 명확한 물증을 남겼을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집권층의 집요한 요구가 있었을테고 그 집요함을 거부할 용기가 우리에게 없었던 것이다. 시청자를 무시한 일련의 과정은 방송을 정권의 선전홍보 도구로 이용하고자 하는 집권자들의 속셈과, 권력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방송인들의 보신주의가 한 데 어우러져 나온 작품이다.
채널 고를 자유는 시청자의 권리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4번째인 <국민과의 대화>에 전혀 의미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국정 운영의 방향을 알리고 국민의 의견을 경청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좋은 음식이라고 해서 아무한테나 억지로 먹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은, 무엇보다도 우선인 '자유' 그 자체여야 한다.
서리맞은 갈대, SBS 중계 시청률
최근 회사가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시청률 전략에서도 <국민과의 대화> 편성은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흔히 PD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시청률 제로를 향해 도전한다"는 농담이 거의 현실화된 것이다.
<국민과의 대화>의 시청률이 4%대로 3사가운데 최저인데다, 프로그램 중간 부분의 시청률은 거의 0%에 이르기도 했다. 또 그 여파로, (9시에 방송된) 8시 뉴스의 톱 단락, 즉 <국민과의 대화>를 요약해 전한 리포트들도 거의 시청률 곡선의 바닥을 기었다.
똑같은 프로그램을 방송한 KBS는 <국민과의 대화> 시청률이 우리의 4배가 넘었고 MBC도 거의 2배였다. 이는 많은 시청자들이 <국민과의 대화> 같은 프로그램은 공영 채널이 맡는게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공영은 공영답게, 민영은 민영답게
결국 <국민과의 대화> 중계방송을 강행해서 우리는 시청자들로부터 신뢰도 잃었고 시청률도 잃었다. 해냔 것이라고는 아마 '4%의 시청률이 어디냐(혹은 몇 표냐)'며 기뻐할 집권층에 대한 아부뿐이다.
우리 노조가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많은 시청자 단체들, 그보다 더 많은 시청자들이 잘 알 듯이 <국민과의 대화>같은 프로그램은 되도록 공영방송을 통해 해야 한다. 굳이 양보한다면 방송 3사가 돌아가며 중계를 하면 된다. 그 선을 넘는다면 권-언 유착일 수밖에 없다. 작성일:2001-03-06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