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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갈무리] '복지기금 출연 0원' ㅡ 노동자 무시한 자본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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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본부
등록일
2001-04-12 01:00:00
조회수
1317
'복지기금 출연 0원' ㅡ 노동자 무시한 자본의 논리


사내 근로복지기금은 노사협력의 상징적인 제도이다. 회사가 이익금의 일부를 출연해 기금을 만들고 출연금의 일부와 기금의 수익금으로 노동자들을 위한 주택자금 융자와 자녀학자금 지원 등의 여러가지 복지사업을 시행하는 제도다. 노동자들을 위한 일종의 '쌈짓돈'을 만들어 둔 것이다. 회사에서 '쌈짓돈' 굴려보았지 나오는 돈 얼마 안되니. 앞으로 사측에서 타서 쓰라고 한다면 그것이 과연 노동자를 위한 일인가?
이번 복지기금 출연 문제는 사측이 노동자를 바라보는 수준이 어떤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IMF사태로 온 나라가 어렵고 SBS도 휘정했던 때 복지기금 안 냈다고 사원들이 말 한마디라도 한 적이 있는가? 오히려 그 때 깎였던 수당중 일부가 아직까지 원상회복이 안되고 있는데도 착한 사원들은 묵묵히 일만 하고 있다.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 지난 해 우리는 사상 최대의 흑자를 누렸다. 성과배분제를 적용해 사원들도 어느 해보다 넉넉한 월급봉투를 가지고 갈 수 있었다. 당연히 근로복지기금도 '회사가 알아서' 적어도 전보다는 많이 출연할 것으로 생각했다. 착한 사원들의 이런 기대가 배반당한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일언반구 통보도 없이 이런 일이 결정됐다는 것이다. 사내근로복지기금 정관에는 "노사 동수의 협의회"를 만들어 이 협의회에서 출연금액을 결정하도록 돼 있다. 회사는 이 정관을 아예 무시했다.
물론 회사측의 주장에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해 출연한 복지기금의 30%만 쓸 수 있고 나머지 70%는 이자 수익만 쓸 수 있도록 한 법규정 때문에 금리가 낮은 현 상황에서는 복지 기금 출연을 하는 것보다, 세금을 내더라도 회사의 이익금 가운데 일부를 복지에 쓰는게 더 나아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저금리시대는 이미 굳어지고 있는 추세다. 회사의 주장은 솔직히 말하면 "앞으로 복지기금 출연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복지기금을 내지 않은 만큼, 사원들이 복지 혜택을 누리도록 돈을 쓰겠다"는 회사의 약속도 결코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첫째, 회사가 진정으로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기금 출연 0원을 결저하기 전에 노조와 협의했어야 했다. 둘째, 회사는 다가오는 노동절 기념 선물 결정을 앞두고 노조에 "복지기금이 얼마 없어 작년보다 선물 규모를 좀 줄이는게 어떠냐"는 식의 의사타진을 해온 바 있다. 상황이 이런진데 "회사를 믿어달라"는 말은 차라리 공허하기까지 하다.
'사상 최대 흑자에 복지기금 출연 0원' 사건은 SBS 경영진에게 밴 냉혹하고 철저한 자본의 논리를 잘 보여준다. 노조를 무시해온 지금까지의 관행도 곳곳에 스며 있다. 이런 경영방침이 이제 곧 있을 임금협상에서 그대로 재현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진정한 동반자라면 금리가 낮아서 출연을 하지 않았든 다른 이유가 있었든, 어떤 경우에라도 사전에 협의했어야 했다. 노동자들의 '쌈짓돈'을 건드리면서 '쌈짓돈'의 주인이 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도 협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회사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복지기금 문제를 노조와 협의해야 한다. 차디찬 경영의 논리를 지켜보는 착한 사원들은 왠지 서글프다는 점을 말해 둔다.
작성일:2001-04-12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