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노조를 무시하고 갑자기 일방적으로 편성규약을 강행하려는 데 대해 불순한 외부 압력이 작용하지 않았는지 의혹이 일고 있다.
이런 의혹은 이미 지난해 말 KBS사측이 노조와 편성규약 제정을 추진하다가 돌연 협의를 중단하고 일방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편성규약을 발표해 물의를 빚은 새태와 비교할 때 설득력을 지닌다.
첫째는, 편성규약 제정에 노조를 참여시키면 경영권에 손상을 입는 것으로 보는 사측의 오해와 억측이 지나치다는 측면이다.
두번째는, 방송 독립과 자율을 담보하는 편성규약에 노조의 참여를 허용하면 노조의 공식 견제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노조의 참여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그림자 세력의 존재 가능성이다.
앞으로도 방송을 좌지우지하며 멋대로 이용하고 싶어하는 권력이나 자본, 이해관계 집단의 눈으로 보면 공정방송을 감시하며 행동력을 갖춘 노조는 눈엣가시인 것은 사실이다.
MBC의 경우 노성대 전임 사장도 KBS 사측의 뒤를 따라 공정성과 독립성을 담보하기 위한 노조의 규약안을 거부하면서 노조와 불필요한 마찰을 빚다가 결국 중도 퇴임하는 비운을 맞았다. MBC의 편성규약 제정 움직임은 신임 김중배 사장이 공영성 강화와 정치적 독립을 주요 개혁과제로 내세우면서 다시 본 궤도에 오리기 시작했다. MBC 노사는 지난 4월4일 공정방송협의회에서 편성규약 제정 문제를 논의하고 노사 합의로 편성규약을 제정하기로 뜻을 모아 방송계 안팎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현재 MBC 사측은 편성 부문이 중심이 되어 여러 부문 간부진을 대상으로 의견을 모아 사측 규약안을 다듬과 있다. MBC노조는 사측 안이 나오면 이미 사측에 제시한 노조 규약안과 대조해 노사합동 규약을 이끌어 낼 예정이라면서 기대 속에 기다리고 있다.
지역민방들은 SBS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KBC(광주방송)의 경우 이미 지난달부터 노사가 함께 편성규약 제정을 위한 실무협의팀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KBC노조도 회사로부터 논의 상대로 당당하게 인정받으면서 편성규약 노조안을 제시한 것을 비롯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SBS 사측이 노조를 대화상대로 인정하려 들지 않으려는 낌새가 보이자 KBC 사측도 타사의 진행 상황을 살펴가며 추진하자고 주춤거리다가, MBC안을 본 뒤 논의하자, 민방 통일안을 만들자고 꼬리를 빼려들고 있다.
이에 전국민방노조협의회 회원 노조들은 지난 10일 서울에서 열린 대표자 회의에서 우리 노조에 대해 편성규약 제정 문제와 노사 협력의 시범을 보여달라고 강력하게 주문했다. 매비우스, KNOC 시청자위원회 같은 시청자 단체와 민언련과 언개련을 비롯해 언론분야 시민단체들도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특히 SBS에 대해 상업 논리가 강한 민방으로서 방송의 독립과 자율을 보장받으려면 남다른 결의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SBS가 대승적인 노사 협력으로 모범적이 편성규약을 제정하지 않을 경우 안팎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실망만 끼칠 것은 뻔한 사실이다. 이런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을 때 회사가 안팎의 비판과 질타,불신을 어떻게 감내할 것인지 의문이다. 작성일:2001-05-22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