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구조적인 비리와 부조리를 짚어 고발하는 시사교양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이제 방송에서 퇴출 당할 위기에 처했다. <그것이 알고싶다 - 아가동산 그후 5년>이 법원에서 방영금지 가처분 당한 사실은 이나라 사법부가 방송의 취재 보도 정신을 십자가에 붙들어 매고 대못을 박음으로써, 사회의 거악에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폭거에 다름 아니다.
우리 방송인들의 자존심은 그만두고라도 우리에게 취재 보도의 영역을 맡긴 전체 시청자 대중의 눈과 귀는 틀어 막히게 됐다. 재판부는 '신청인 김기순이 대법원에서 살인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받았고 이미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아가동산의 성격과 실체가 세상에 자세히 알려졌으므로 SBS가 다시 취재 내용을 방영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방송해선 안 될 내용으로 아가동산 측이 열거한 사항 7가지를 별지목록으로 붙였는데, 뒤집어보면 바로 아가동산의 비리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재판부의 논리에 따른다면 대법원이 무죄로 선고한 사안은 앞으로 언론이 일체 재론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무죄 확정 선고라는 것은 당시의 정황과 유한한 증거에 따라 최고 법원이 내린 결론일 뿐, 피고인이 진실로, 100퍼센트 완전무결하게 결백함을 양심과 신 앞에 입증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가동산 사건에 관해 당시 법정에서 김기순에게 유리한 증언을 한 사람들이 나중에 양심선언을 통해 숨겨진 사실을 밝혔다.
취재진은 의문의 실종을 한 여성의 아버지를 비롯해 핵심 증언자들의 용기 있는 결단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조명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이었다. 그런데도 가처분 심리 재판부는 새로운 사실을 무시했다. 아가동산측이 가처분 신청을 내기 위해 대리인으로 내세운 안상운 변호사는 토론회나 기고를 통해 자신의 '공적'을 내새우면서 '얼마나 취재보도가 부실했다고 판단했으면 법원이 그렇게 어렵다는 가처분결정을 했겠는가(미디어오늘 8월 23일자 6면)'며 우리 제작진의 노력을 폄하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안 변호사는 현재 언개련의 '언론정보공개시민운동본부장'직함을 갖고 있으면서 이번 아가동산 사건뿐 아니라, 주로 비리 의혹으로 물의를 빚는 부유한 종교 단체를 위해서 법률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SBS에 조직적으로 전화항의를 벌여 업무를 방해한 '정명석의 JMS', MBC난입사태를 벌인 '이재록의 만민중앙교회'가 시도한 방영금지가처분 신청도 안 변호사가 개입한 것이다.
지난 21일 언개련이 마련한 내부 토론회에서 김성규 변호사(언론노조 법률고문)는 방송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종교집단은 개인이 아니라 이미 사회의 공적인 권력집단이기 때문에 종교집단에 대한 추적 탐사보도는 마땅히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정당하다고 반박했다.
따라서 국민이 알아도 무방한 것과 알아선 안될 것을 사법부가 미리 구분하는 것은 사법부가 스스로 전지전능하다면서 국민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김 변호사는 지적했다. 방영금지 가처분에 관해서는 이미 MBC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번 아가동산 사태는 한국 방송계가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잃느냐 마느냐 갈림길이 될 것이다. 방송언론의 기본사명을 지키는 과업에 제작 관할 본부장과 경영진을 포함해 SBS 모든 구성원의 단호한 대응 노력이 절실하다. 작성일:2001-08-29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