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창사 초기 'SBS가 안나와요'라는 항의 전화에 시달리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이제는 그런 전화가 거의 없다. 과연 그럴까? 아직도 "SBS를 보고 싶어요"라는 전화는 숱하게 온다. 그리고 방송 11년째인 지금도 SBS 전파를 잡기 위해서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아파트, 가정집등을 때로는 목숨을 걸고 찾아다니는 전파 사냥꾼들이 있다. 이 사냥꾼들, 방송장비정비실 수신개선팀 조합원들의 하루를 뒤쫓아봤다.
#scene1. 오전 10시 본사 출발
오늘 근무지는 대단지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노원구, 출동 인원은 3명, 박삼만, 박종대, 안장환씨. 세 사람의 옷차림부터가 수상하다. 미끄럼 방지용 운동화에 운동복처럼 편안한 옷차림, 그리고 모자는 필수다. 지프에 공구와 기술장비, 안테나 등을 싣고 출발.
월계 1동 대동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순간 아찔한(?) 세 사람의 눈빛이 교차한다. 25층 아파트 지붕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안테나. 저길 또 어떻게 올라가나...찌는 듯했던 늦더위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관리실에서 수신상태와 SBS관련 민원은 없는지 확인한다. 다행히 수신기를 교체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어서 25층 꼭대기에서의 곡예는 피할 수 있었다. 친절하고 꼼꼼한 설명에 관리실 직원들의 얼굴은 감동 또 감동.
#scene2. 중계동 대림 벽산 아파트 관리실
장소를 옮기면서 그 동안의 무용담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붕 끝 30센티미터 안쪽으로 매달린 낡은 수신기 교체작업에 목숨 건 이야기며, 어렵게 전파를 잡아 놨더니 어디로 도망을 갔는지 다시 연락이 와서 한밤중에 달려갔다는 이야기들이 잠시 이어졌다. 이 곳은 얼마 전 주민들의 민원을 아파트 관리실이 자체 해결했다. 여인천하를 보지 못한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쳐 외부 기술자들을 불렀다고 한다. SBS 드라마의 인기를 절감.
#scene3. 하계동 현대우성아파트 옥상
삼각 지붕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요즘 신축된 아파트들은 대부분 예쁜 삼각지붕이라 훨씬 위험하다. 작업도중 실수라도 한다면...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안테나가 설치된 옥탑으로 오르는 길은 외벽 사다리뿐이다. 늦더위에 열 받은 옥상의 체감 온도는 상상을 넘는다. 그러나 더위를 느끼는 것도 잠시, 휑한 한기가 등골을 스친다. 주파수에 맞춰 안테나를 고정하고 옥탑을 내려오는 3인의 얼굴은 긴장감으로 풍선처럼 팽팽하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지금의 일에 보람을 느낀다는 이들. 지금까지 37만 세대에 맑고 깨끗한 SBS 방송을 전했다.
#scene4. 그 외 에피소드
윤세영 회장 자택도 상습 난시청 지역이라 수신기 설치 작업을 해야 했다. 일이 끝나고 출출한 직원들을 위해 윤회장이 만찬을 준비했다. 만찬 메뉴는 자장면. 윤 회장과 거실에 앉아 함께 먹은 자장면 한 그릇의 기억은 "우리 회장님은 자장면을 참 좋아한다"는 확신으로 바뀌어 있다.
고관대작의 지붕을 누비고, 지체장애인들의 보금자리를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 TV를 보물단지처럼 생각하는 어느 양로원에서 모니터도 고쳐주고 먼지까지 깨끗이 닦아주었다는 11년 동안의 흐뭇한 에피소드들, 바로 숨어 있는 이들의 고귀한 노동이다. 난시청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작성일:2001-08-29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