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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갈무리] (공방위보고서) 소송 보신주의 그리고 '의도된 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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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본부
등록일
2001-10-25 01:00:00
조회수
1325
(공방위보고서) 소송 보신주의 그리고 '의도된 낙종'


보도에 따른 명예회손과 인격권 침해, 그리고 소송, 최근 폭증하는 추세지만, SBS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청구된 소송가액의 총액이 5억원정도라면 대부분의 기자와 변호사들은 놀란다. 그만큼 보도에 신중을 기해온 덕분일 터. 그러나 신중이 지나친 것은 아닌지? '소송을 당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지나쳐서 '소송은 피하고 봐야 한다'는 결의로 굳어지고, 결국 '의도된 낙종'으로 결론 맺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지난 9월 25일.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신안그룹의 박순석 회장이 수십억원대 내기 골프를 쳤다가 구속 영장이 청구됐다. 그러나 SBS는 '박회장을 공인으로 볼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다루지 않았다. 다음 날인 26일 영장이 발부된 사실도 보도하지 않아, 그야말로 '기소 전에는 피의사실을 공표하지 말라'는 형법의 요구를 충실히 따랐다. 그렇지만 그 뒤 영장 청구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을 피해가지 못하고, SBS는 피의사실 공표죄를 범하고 말았다. 바위 틈에 머리를 박고 위험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타조와 다를 바 없다. 왜 그랬을까?
당시 구속영장 청구를 전후해 보도분부의 담당부서는 자문 변화사와 기사화 여부를 상의했다. 변호사의 답변은 '위험하다'는 것. 그렇다고 당사자나 회사 이름을 밝히지 않고 기사를 내자니,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기사는 나가지 못했다. 최근 담당 변호사에게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변호사는 그렇게 답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법을 어겨도 좋다고 조언할 변호사는 없다.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결국 자문은 자문일 뿐, 기사화 여부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수사기관의 수사 상황도, 기자의 취재 정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변호사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자세는 면피성 구실 찾기에 불과하다.
소송이라는 괴물이 기자들을 위축시키는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경찰 수사 내용을 기사로 작성했다가 한 기자는 뜻밖의 소송을 당했는데, 문제는 회사측에서 '5백만원에 소 취하'하는 안을 원고측에 나놓자고 한 것. 이 기자는 피의자의 이름도 얼굴도 밝히지 않았기 떄문에 승소를 자신하고 있었지만, 회사는 재판 비용을 생각하면 5백만원에 합의하는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자의 자존심과 시가 그리고 사실을 향한 열정이 자리하던 곳에, 돈의 논리가 들어앉고 있다.
기자들의 발목을 잡는 일은 더 있다. 회사로부터 EFG 평가방식 개발을 맡은 교수측에서 '소송을 당한 횟수와 소송 결과'를 EFG 평가항목에 포함시키려 하는 것. 소송을 많이 당하고, 또 패소해서 회사에 손해를 끼친 기자들은 낮은 점수를 줘야 한다는 논리인데, 언론의 본질과 현실을 무시한 단견이다.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언론 현실은, 걸면 걸리는 상황이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그런데 소송에 걸리면 벌점을 준다니...소송의 위험이 없는 안전지대만을 찾아다녀야 할 판이다. '힘 있는 고발'은 전시성 공염불이 되고, SBS 뉴스는 '그 밥에 그 나물'뿐인 밥상으로 외면 받을 것이다.
건강을 지나치게 걱정하면, 건강을 해친다고 한다. 돌다리를 무수히 두드리다가, 남 다 건너간 뒤에 물끄러미 앉아 하늘만 쳐다보는 지각생이 될 뿐이다. 소송을 완벽하게 피해갈 방법은 없다. 기자의 충실한 취재와보도 간부의 원숙한 판단으로 위험을 최대한 줄일 수 있을 뿐이다.
작성일:2001-10-25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