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지하철 파업당시 모 기자는 오후 늦게 '파업으로 시민불편'이란 아이텀을 제작하라는 '총(갑자기 데스크의 지시를 받아 취재하는 것)'을 맞았다. 출근길에 제작을 나갔더라면, 인터뷰 몇 개에 스탠딩 하나로 수월하게 제작을 마쳤을텐데,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 오후 시간이라 인터뷰 따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제작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던 것은 인터뷰를 한 20여명의 시민 가운데 지하철 파업으로 인한 불편을 호소한 시민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었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생각보다 파업에 호응적이었다. 구조조정의 태풍에 직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당장의 불편보다는 지하철 노동자들의 절박한 상황을 이해해줘야 한다는 시민들이 의외로 많았다. 하지만, 그날 기사는 역시'총'맞은대로, 파업으로 불편해하는 시민들의 모습으로 나갔다.
아마, 이런 경험은 누구나 한두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오후 늦게 지시받고 허겁지겁 제작에 나갈 때, 기자의 머리속에 남아있는 것은 어떻게 해서 8시 뉴스에 맞출 것인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한순간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일순간의 사치스러운 생각이다. 최종 회의 큐시트에 내 아이템이 잡혀있고, 만들지 못하면 펑크가 나는 상황이다. 취재과정에서, 발제된 아이템과 다른 상황을 접하더라도, 별 문제될 것은 없다. 내가 원하는 인터뷰와 그림을 찍으면 되니까...
8시 뉴스에 방송되고 나면 그제서야 '후유'하는 한숨을 내쉰다. 그라고는 잠시 생각할 것이다. '내가 오늘 쓴 기사가 제대로 된 기사인가, 나는 언론인으로서 사회적 소명을 다하고 있는가.' 하지만, 그 뿐이다. 밤에는 폭탄주가 기다리고 있고, 다음날은 또 다른 총을 맞아야하니까.
고급옷 사건이나, 검찰의 파업유도 발언과 같이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되는 사건을 접할 때, SBS의 보도 방향이 제대로 잡혀 있는지 심각히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총맞은 아이템을 내보내기에 그저 급급해 하지는 않았는지? 사실 고민한다고해서 별로 달라질 것도 없다. 그런 의견을 표출할 방법도 없으니까. 지금 SBS에는 데스크의 의견만 있을 뿐, 평기자의 의견은 없다.
우리는 편집권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편집권에 대한 피드백 작용이 사내에 전혀 없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현장 상황과 데스크의 인식에 차이가 있다면, 정치, 사회적 주요사건에 대한 편집방향이 잘못됐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당연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사회에 대한 건전한 비판 기능을 부여받은 언론인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권리이자 의무이다. 보도에 대한 비판은 언론사 밖에서 보다는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평기자가 SBS보도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그러한 메카니즘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들 사이에 자유토론의 장을 만들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자신이 보도하는 내용이든, 다른 사람의 보도 내용이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자유롭게 토론의 장에 올리고, 다른 동료들의 의견을 구해보라. 이것은 결코 특정 기자나 테스크를 매도하자는 것이 아니다.
건전한 비판의식을 내부에서부터 확립하고, 데스크로부터 평기자로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향 통신을 이루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메카니즘의 형성 자체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기자들 스스로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주장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비판의 활성화만이 SBS보도를 더욱 힘있고 건전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작성일:1999-06-25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