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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중립성’인가?

회사는 3월초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고문인 문성근씨가 민주당 경선장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장면이 TV에 비치자 즉각 진행자 교체를 지시했다. 그러나 프로그램에서 차지하는 문씨의 비중을 고려한 제작진이 교체 대신에 경선장 불참 등 문씨의 정치활동 자제를 제안했고 문씨도 이를 수용해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4월 들어 노무현씨의 후보 당선이 예상되고 문씨도 노사모 활동을 중단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제작진과 문씨는 월드컵 방송으로 5주간 방송이 쉬게되는 5월말에 자진 사퇴할 것을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4월 30일, 동아일보가, “앞으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 (부당한 보도를 계속할 경우) 구독 부수를 50만-100만 부 떨어뜨려야 한다”는 노사모 뒤풀이 모임에서의 문씨 발언을 보도하고, ‘특정후보의 열렬한 지지자인 문씨가 SBS TV 시사다큐프로인 <그것이 알고 싶다> 를 진행하는 것이 합당한가를 생각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에 회사는 문씨가 SBS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며 즉각적인 진행자 교체를 지시하였다. 노조는 갑작스런 진행자 교체에 대한 외부의 오해를 막고 제작진의 어려움과 시청자에게 줄 충격을 감안해 예정대로 5월 25일까지 문씨가 진행을 하게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이를 일부만 수용해 5월 11일까지 문씨가 진행을 할 수 있게 했고 예상대로 내, 외부에서 ‘중도사퇴 외압설’과 ‘SBS의 정치적 편향’ 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번 진행자 교체 과정에서 나타난 몇 가지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의사결정의 과정이 철저하게 비민주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진행자의 정치적 입장이 방송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그것이 알고 싶다>는 정치 현안을 다루지 않을 뿐더러 대본에 따라 사전 녹화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자는 PD와 작가가 취재한 내용을 전달하는 연기자일 뿐이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SBS의 최고경영자가, 진행자의 이미지가 특정후보를 유리하게 할 수도 있다는 추상적인 판단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반영된 신문기사를 근거로, 제작진과 진행자와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자 교체를 요구한 것은 명백한 비민주적 의사결정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제작진과 진행자가 합의한 자진사퇴 시기를 불과 3주 앞두고, 예상되는 파장을 감수하면서까지 교체를 추진한 것은 외부의 압력이나 SBS의 정치적 편향에 대한 의혹을 자초하는 그릇된 결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회사는 이번의 진행자 교체가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의도가 무엇이었던지 간에 결과가 SBS의 정치적 중립성에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다면 ‘진행자 교체’라는 행위는 또 다른 정치적인 행위로 간주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민주적인 의사결정의 과정이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방송사는 사주나 최고경영자 한 사람의 방송철학이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정책이 결정되는 사적인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