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에서 온 편지 "그들의 파업에 대해 어느 누구도 지나치다고 얘기 하지 않습니다. 하리의 언론은 파업이 정당하다느니 시민을 담보로 하는 흥정이라느니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파리에 도착한지 보름이 되어서야 소식 전합니다.
이곳은 지금 여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라서 날씨 별화가 심한 편 입니다. 아침에는 거의 초겨울 날씨까지 갔다가 한낮에는 한여름까지 갈 정도로 일교차가 심해서 오자마자 한동안 감기에 시달렸습니다.
우리 SBS 노조 활동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계약직 사원 문제가 거론됐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그리고 단체협상은 잘 되어가는지도 궁금하구요.
아직 한달도 안 됐지만 완전히 회사 소식이 단절된 채로 살려니까 갑자기 정보공황 상태가 돼서 무엇부터 확인하고 챙겨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 컴퓨터와 인터넷을 준비했지만 확실히 프랑스와 한국은 멀고도 먼 나라인가봅니다. 준비한 것에 비해 부족한게 너무 많이 이것저것 보완하느라 이제야 메일을 보냅니다.
그리고 이곳 기숙사의 통신요금이 너무 비싸 인터넷을 맘놓고 쓰기에는 큰 부담을 느낄 정도라서 숙소도 다음달에는 다른 곳으로 옮겨볼까 생각중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오자마자 이곳 대중교통 파업을 경험했는데 서울과 너무 대비가 되서 놀랐고, 확실히 내가 파리에 있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이곳의 파업은 예고도 없이 일어났습니다. 지하철 종사자 한 사람이 테러로 살해당한 사건 바로 다음 날이었습니다. 대중교통 노조원들은 생명을 보호하지 못할만큼 일터의 치안이 방치된 상태에서는 일을 할 수 없다고 파업에 들어갔는데, 중요한 것은 그들의 파업에 어느 누구도 지나치다고 나서서 얘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언론의 보도도 그렇고 특히 교통이용자인 시민들이 1,2시간을 꼬박 걸어서 혹은 승용차로 꽉 막힌 길에 갇혀서 짜증이 날 법도 한테 프랑스 사람들은 자신에게 불편을 끼치는 그들의 파업을 정당하지 않다느니, 시민을 담보로 한 흥정이라느니 따위의 불평은 입밖에도 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림도 없겠지요.
정부당국이 치안에 대한 다집을 법적으로 고려하겠다는 반응 그리고 실제로 지하철 곳곳에 무장 군인이 등장할만큼 제스쳐를 보일 때 쯤 대중교통노조는 스스로 투표를 통해 파업취소를 결정하고 현장에 복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에 피살된 동료 노조원 추도식을 위해 다시 반나절 파업을 했는데 그떄도 역시 파리 시내는 승용차가 넘쳐난다는 사실 이외에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히 넘어갔습니다.
안정된 서구사회의 힘이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절감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파업에 대한 우리의 시각, 특히 공공부문 종사자들의 파업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실로 끔찍할 따름입니다.
이런 정도로 서울과 파리의 격차를 어떻게 줄여야 할지, 서울이 서구의 안정된 사회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갈 수 있는 열쇠는 무엇일까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은 이만 줄이고 다음에 다시 연락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