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리가 서로가 함께 살아가야할 때" -회장으로부터 "이젠 내가 회사를 배반할때다"를 받고
느닷없이 집으로 배달되어온 책을 받고 두 번 놀랐다는 사람들이 많다. 한번은 회장께서 이런 책을 일일이 집으로 보내도록 했다는 데서 놀랐고 또 한번은 도발적인 책 제목에 놀랐다. 말하자면 이처럼 도발적인 내용의 책을 우리 회장께서 사원들에게 보냈다는 것이 놀라웠던 셈이다.
회장께서는 평소 사원들에 대한 애정을 전하고 싶었는데 방법을 고민하다 마침 이 책이 '변화'라고 하는 이 시대의 화두를 다루고 있어서 사원들에게 도움도 될 것 같아 책을 보냈다고 한다. 특히 최근에 경조사가 있었던 사원들의 경우에는 그런 내용도 메시지에 반영하도록 했다고 한다. 전적으로 회장 개인의 뜻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에 1340권의 책 구입비와 발송비 등 797만원의 예산을 전액 회사 공금이 아닌 개인 돈으로 지불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책을 받은 조합원들의 반응은 매우 엇갈리고 있다. 별 생각 없이 책을 받은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예상 밖으로 많았다는 얘기다. 우선 책 제목에 대해서다. <이젠 내가 회사를 바반할 때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이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다. 조합원들 입장에서야 이 책이 정말 급변하는 시대에 노동자들이 살아남을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도움이 되는 것이고 그런 책을 누군가 선물했다면 과히 기분 나쁠 일은 없을 법하다. 그런데 왜 반응이 엇갈리는 것일까. 일부 조합원들은 마치 "배반할 테면 해 봐"라거나 "배반당할 준비를 해"라는 식으로 책 제목을 읽었다고 한다. 어떤 조합원들은 책 속지에 씌어진 문구들이 마음에 걸린다고도 했다. 하지만 본부 별로, 직급 별로 수십가지나 되는 문구가 있다는 것을 아는 조합원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다양한 문구 만큼이나 책을 보낸 회장의 뜻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그러나 직접 여쭤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사실은 더 답답한 일이다. 그렇다면, 정말 회장의 뜻이 위에 적은 것과 같다면, 그런 뜻을 기준으로 삼아 책에 씌어진 문구들을 다시 앍어보면 어떨까.
먼저 책 제목에 대해서. "SBS에 뛰어난 인재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청운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 SBS가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 배출하는 훌륭한 통로가 되도록 하는거"
이 회장의 소망이며 <이젠 내가 회사를 배반할 때다>라는 이 책 제목은 이런 점에서 회장이 "평소에 생각하던 바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SBS가 이런 인재를 양성해 내는 통로가 되려면 사원들이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장려되어야 한다. 따라서 "실력이 있는 사람은 당당해 질 수 있고 언제 어떤 자리에 있어도 결국은 인정받게 마련"이며 그런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미래를 위해 지금 바로 이 순간 자신을 위해 투자하고 노력해주기를"당부하고 있다.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위해. 특히 자신의 미래를 위해노력하는 것이 바로 회사를 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특히 SBS는 "어떤 조직보다 사람을 소중히 하는 조직"이며 "사람을 귀히 여기고 사람을 아낄 줄 아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집하면서 사원들의 건강까지 세심하게 염려하고 있다.
그러나 해석상 염려스런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좋게 읽을 수도 있는 일부 문구들에 대한 '거꾸로 읽기', 혹은 '뒤집어 보기'를 해보면 사원들의 엇갈리는 반응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세상은 공평"하니 아무 곳에서 아무 일을 하게 되더라도 "싫은 소리 한마디 없이 고군분투"하는 것이 지금까지 회사 발전의 기틀이었다거나 "밤낮은 물론 휴일도 잊고 진력"하는 것이 사원들의 당연한 태도라는 '읽기'가 가능한 부분들도 있다. 특히 "SBS의 발전이 사원의 발전"이라는 부분은 솔직히 "개개인의 미래를 위한 투자"를 당부하면서 나악 ㅏ"사람에 대한 투자"를 주창하는 논리라면 "사원의 발전이 SBS의 발전"이라고 바꾸어 썼더라면 오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회사와 개인이 모두 사는 길, 특히 모두 잘 사는 길은 개인의 발전에 조직의 발전을 앞세우지 않고, 조직의 발전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 각 개인의 발전을 최대한 도모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이젠 내가 회사를 배반할 때다>라는 책이 갖고 있는 기본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누군가 책을 선물하면 즐겁고 반갑게 받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실제로 상당수 조합우너들은 그런 순수한 심정으로 책을 받아들였다. 선물을 받았으면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 도리다. 달리 인사를 하고 싶어도 그럴 자리가 없는 까닭에 이 자리를 빌어 조합원들의 인사를 대신하고자 한다. 다만 이 책 한 권을 받고 왜 수많은 사원들이 이처럼 갖가지 복잡한 생각을 했어야 하는지를 회장께서는 잠깐만이라도 돌아봐 주시기 바란다. 책 한권도 그냥 못 받아 넘기는 사원들의 마음을 편협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이처럼 책을 선물한 사람과 입사 이후 처음으로 회장으로부터 책을 선물받은 사원들 사이에 패여 있는 골의 애력과 함께 그것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작성일:1999-07-10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