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파업의 돌풍이 불어닥쳤다. KBS, MBC의 전유물이었던 파업이 우리 SBS에도 현실로 다가선 것이다.열흘하고도 며칠 넘게 계속되는 양 사의 파업을 지켜보면서도, 파업은 우리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파업하는 이유가 통합방송법 때문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도 파업은 우리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왜 파업을 하는가?
이 뜨거운 한여름의 태양 아래서, 무엇을 위해, 왜 파업이라는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가?
정부 여당이 만들어 제시한 통합방송법이 말 그대로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해 준다면 그 당사자인 그들은 왜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맞서고 있는가?
이런 모든 물음들은 분명 그들의 몫이었다. 우리의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과연 그럴까? 새로운 방송법이 방송의 독립과 공정을 보장해 줄까, 아니면 오히려 방소으이 군력 종속을 더 심화시킬까? 또 방송법은 공영방송에만 적용되고 민영방송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안일까?
혹자는 말한다. 방송법은 공영방송사에서나 관심있는 문제니까, 민방은 관여할 필요가 없다고. 과연 그럴까? 방송법과 민영방송은 아무 상관없는 것일까?
지금까지는 상관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상관없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우리모두 생명처럼 소중한 방송에 너무 열중하다보니, 우리의 방송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선 무관심했던 것이다.
방송법은 향후 우리의 방송을 제도적을 통제할 법적 장치다
이 법적 장치에 의한 통제는 공영방송이나, 민영방송을 가리지 않고 있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를 방송위원회는 공영방송의 인사와 편성말을 통제하는 것 같아도 결국 이 방침들은 민방에도 곧바로 전달된다.
공영방송이 권력에 예속되면, 민영방송은 권력의 쇠사슬을 풀 가능성이 더욱 적어진다.
통합방송법이 민방을 비껴간다는 말은 우리가 공기없이 살아 갈 수 있다는 말고 마찬가지다. 방송법이 비단 KBS,MBC만의 문제라는 말도 우리가 물 없이 살아 갈 수 있다는 말과 같다.
혹자는 말한다. 왜 뒤늦게 파업 문제에 휘말리냐고.
그렇다. 우린 늦었다. 모든 사람들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온몸으로 거부할때 우린 마치 우리문제가 아닌듯이 애써 현실을 외면해 왔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SBS는 사회적 문제, 공익과 관련된 문제, 구조적 문제에 대해선 적극적 개입을 피해왔다. 'SBS는 저질 상업방송'이란 이미지는 있지만 '권력에 맞서 싸우는 용기있는' 이미지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 모두 인정하자.
방송법은 남의 일이 아니다. 방송민주화를 이룩하고, 독립성과 공정성을 법적으로 보장 받자는데, 이일이 결코 남의 일이 될수 없다.
늦었다는 것도 인정하자.
늦었다는 걸 알면서 또 옳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 이걸 지적하는데 더 이상 인색하지 말자.
이제 우린 방송언론인으로서의 양심을 걸고 파업 찬반투표를 시작한다. 이번 파어 찬반투표는 SBS 노조와 SBS에 종사하는 모든 방송언론인의 양심과 용기의 시험장이다.
그동안 우리가 남들로부터 받아온 질책과 멸시를 한꺼번에 털어버리자.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말하는 용기를 되찾자. 작성일:1999-07-26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