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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갈무리] (공방위 보고서) 신창원과 놀아난 넝마주의 저널리즘을 버리자

닉네임
SBS본부
등록일
1999-07-26 01:00:00
조회수
2011
(공방위 보고서) 신창원과 놀아난 넝마주의 저널리즘을 버리자
제작에 가까운 선정적인 보도행태 난무
국민의 재산인 전파이용 책임있는 방송인의 자세 필요

신창원이 붙잡힌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이 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SBS는 그동안 8시 뉴스 시청률이 최고 15%대까지 올렸다. 또 KBS와 MBC가 파업으로 연합통신 기사를 제대로 거르지도 못한 채 리포트로 제작해 쏟아낸 데 비해 그래도 SBS는 상대적으로 충실한 리포트들을 내보냈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방위는 하루 평균 10꼭지 안판을 줄기차게 오르내리는 신창원 관련 보도에 대해 과잉보도, 선정보도라는 우려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꼭지수 늘이기가 쥬스의 질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한다. 최근 일어난 큰 사건을 다루는 보도 경향을 보면 마치 꼭지수의 많고 적음이 곧 데스크의 역량과 뉴스의 질을 보장해 준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꼭지수를 늘릴 아이디어를 많이 내달라는 주문도 있었다. 시도자체는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 아이디어라는 것이 '요건 보도할 줄 몰랐지?'하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공방위의 판단이다.
적어도 학술 논문이 아닌 저널리즘 세계에서 머리로 뛴 기사가 발로 뛴 기사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머리로 뛰다 못해 머리를 쥐어 짜내다 보니 현상을 '확대 해석'하고 떄로는 뉴스가 '없는 환상'을 '제작'하기까지 한다.
"고급 주택 위주로 일반 주택에서도 주문량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략 전년 대비 50%정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 8시 뉴스 '부유층 방범 비상'이라는 리포트에 나온 한 사설경비업체 간부 인터뷰 내용이다.
이 말을 시청자들이 믿을까? 신창원이 잡힌지 얼마나 됐다고 꼭지수를 지나치게 늘리다 보니, 언론이'제작'한 현상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드는게 사실이다. 지레 짐작으로 이른바 '야마'를 먼저 잡은 뒤, 보도에 유리한 팩트만 수집해 가는 넝마주의 저널리즘은 이제 그만두었으면 한다.
꼭지수를 늘이기를 지상선으로 삼다보면 다음과 같은 일도 생긴다. 같은 날, '연희동도 노렸다.'라는 제목의 리포트에서는 신창원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게 테러를 가하려 했지만 집을 못 찾아 실패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리포트에서는 신창원이 현금을 잔뜩 갖고 있는 부유층 집들은 물론 경찰관 집까지 찾아내 털었다고 보도한다.
2년 넘게 경찰 수사망을 교묘히 따돌리고 동망 다니면서 돈 많은 집들을 귀신같이 찾아내 턴 신창원이 세상사람이 다 아는 전, 노 집을 못찾았다는 말인가.
흥미있겠다 싶으면 물불 안가리고 달려들어 신창원의 말을 그대로 옮겨 보도하게 되면서 생긴 일이다. 그러면서도 또다른 리포트에서는 '세상이 신창원의 세치 혀끝에 놀아난다.'고 비판한다. 누워서 침 뱉기다. 세치 혀끝에 놀아난 것은 오히려 언론이 아닌가. 선정적 보도는 이처럼 논리와 합리성으로 무장해야할 뉴스의 자기 정합성마저 무너뜨린다.
또 지난주 한번은 '신창원 패션 인기'라는 리포트가 나갈뻔 했다고 한다. 신창원 패션이 진짜 인기를 끌고 있는지,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이런 아이템이 편집회의를 무사 통과했다면 문제다.
신창원이 던져 놓은 수많은 교훈들 가운데 우리가 겨우 그 '쫄티 패션'에 주목해야 할까. 무슨 회사 제품이고, 가격이 얼마고, 주로 누가 사입고 등등으로 장식돼 전파를 탈 뻔했던 '신창원 패션 인기'리포트. 그 선정적인 쫄티를 벗겨보면 '시청률'이라는 앙상한 갈비뼈만 보일 것이다. (다행히 이 아이템은 기자들의 취재결과 일간지 보도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 취소됐다고 한다.)
큰 사건은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일반시민들에게도 그럴진데 직접 사건현장을 뛰는 기자들은 오줄하랴, 하지만 그럴수록 기자를 비롯한 방송인들은 침착하고 냉정해야 한다. 자기도 믿지 못하는 말, 책임질 수 없는 말들을 함부로 공중의 재산인 전파에 실어 쏟아내서는 안 된다.
요즘 미국에서는 비행기 사고로 숨진 존 F 케네디 2세에 대한 언론의 과잉보도가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ABC, CBS, NBC 등 미국의 3대 네트워크의 메인 뉴스가 내보낸 케네디 2세 관련 보도는 하루 3~4 꼭지였는데 말이다.
작성일:1999-07-26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