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사측은 S-TF의 진단을 반영해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인사를 단행하며, 창업주인 윤세영회장 명의의 담화를 통해 배경을 설명했다. 의사결정 단계의 축소, 권한과 책임의 과감한 위임을 통해 콘텐츠 경쟁력의 핵심인 집단적 창의력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하는 것이 조직개편의 핵심 목표이며,  '건강한 콘텐츠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공동목적에 기반한 공동체 의식과 열린 귀로 경청하고 바판을 받아들이는 소통의 능력을 갖춘 리더십을 혁신의 성패를 좌우할 열쇠로 꼽았다.

 노동조합은 지난 3월 윤석민 부회장의 SBS 이사회 의장 취임에 대한 성명을 통해 '화석처럼 굳어버린 관료주의의 벽을 허물어 소통을 길을 열고 '윗 분의 뜻'을 호가호위하며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 공정성을 훼손해 온 구시대적 행태를 근원적으로 뿌리뽑지 않고는 격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 미래를 담보할 수 없음을 분명히 지적했다.  사측이 담화에서 밝힌 조직개편의 목표와 혁신의 핵심요소들 역시 앞선 조합의 판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실제 조직개편과 인사의 내용이 이런 문제의식을 과연 제대로 구현한 것인가에 대해 노동조합은 냉정하게 진단하지 않을 수 없다.

의사결정 단계 축소(?)…아래는 가볍고 위는 무겁다

 사측은 우선 기존의 7본부, 3실/센터를 5본부, 5실/센터 구조로 바꾸고 9국을 4국으로 줄였다. 제작부문을 중심으로 국장급 보직을 없애고 본부장 직할 체제로 의사결정 단계를 축소한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사장, 부사장을 포함해 사실상 임원급에 해당하는 자리는 편성과 기획본부의 해체와 기능분산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유지된 모양새다. 여전히 방만하다. 오히려 독립적이던 사장과 부사장의 결재와 보고라인이 수직적으로 배치돼 국장급 보직의 축소를 통한 실무단위의 의사결정 단계 간소화가 보도 등 일부 부문에서는 역행하는 구조가 돼 버렸다.

 특히 독립성과 공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보도본부의 경우, 기존에 없던 부사장이 결재보고 라인에 추가되면서 경영진에 의한 과도한 보도개입과 통제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진 것 아니냐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새 술을 헌 부대에(?)…재연된 회전문 인사

 조직개편과 함께 대대적인 인사도 단행되었다. 전 부문에 걸쳐 국장급 이하 실무 책임자들을 중심으로 폭넓은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또 고령화와 인사적체 속에서 뚜렷한 대안없이 방치돼 왔던 시니어들을 대거 현장으로 투입하고 직급직위 제도의 변화를 통해 일하는 조직문화를 구축하고자 하는 노력도 평가할 만 하다.

 이런 긍정적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S-TF 출범의 동인이 됐던 전사적인 경쟁력 하락과 소통부재, 대규모 적자 등 조직이 당면한 위기에 핵심적 책임이 있는 기존 등기 임원진 가운데 1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유임되거나 회전문 인사를 통해 자리만 바뀌어 재기용됐다. 과연 '과감히 권한을 아래로 위임하며 열린 귀로 경청하고 비판을 받아들이는 소통의 능력'을 새로운 리더십의 요체로 규정한 사측의 담화에 부합하는 인사인지 조합은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다. 이번 임원 인사가 대안이 없다는 현실론과 타협을 한 것이든 아니면 임원들에게는 별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따른 것이든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현직 비서실장이 보도본부장에 기용된 것은 대단히 걱정스럽다.

 비서실 출신이라고 불이익을 주라는 것이 아니다. 대주주의 손발이 돼 왔던 비서실장 보도 책임자로 임명한 것이 최근 '그나마 SBS' 라는 야박한 평가 조차 받지 못한 채 대중적 신뢰를 잃고 있는 보도의 공정성과 자율성,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인사라고 한다면 누가 신뢰하겠는가?

 결국 조직개편과 인사 모두 결과적으로 현장 실무단위의 변화의 폭은 컸으나 정작 경영진과 리더십에 대한 책임과 변화의 수준은 실망스럽다는 것이 노동조합의 평가다. 마치 당면한 위기의 책임을 아래로 전가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노동조합은 그동안 사내 어떤 주체들보다 앞장서 낡은 리더십과 조직문화 타파, 경쟁력 회복을 위한 여러 의견들을 제시해 왔다. 여러 차례 용두사미로 끝났던 습관성 TF의 구습이 선명하게 기억으로 남아 있었지만 지난 4월 출범한 S-TF의 활동에는 사내 다른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조합도 독립성과 진정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목소리를 자제하고 결과를 기다려 왔다.
 
 오늘 노보를 통해 조직개편과 인사 내용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혁신에 대한 고민과 노력을 폄훼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구조적 위기와 순환적 위기가 중첩된 상황을 제대로 돌파하기 위해서는 중단없는 혁신의 노력이 지속돼야 하며 이를 위해 혁신을 가로막는 여하한 형태의 구태와 기득권이 철저히 배격돼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조직개편과 인사의 특성상 그동안 비공개로 진행돼 온 S-TF의 논의과정과 문제의식이 이제는 조직구성원들에게 폭넓게 공유돼야 한다. 공감과 동의없이 진행되는 혁신이 안정적으로 착근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측은 S-TF 논의 과정과 조직 진단 내용 등을 공개하고 사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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