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미디어그룹 곳곳에서 무료 노동이 일상화되고 있다. 직원 상당수는 과도한 노동환경에 노출되고도, 정당한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 채용이 가뭄에 콩 나듯 진행되는 탓에 남은 직원들은 과로에 시달리고 있지만, 기존 유연근무 시스템이 정당한 보상체계를 담아내지 못하면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는 <시간외근무수당 및 유연근무제 협약> 3년 유효기간 만료를 앞두고 <노동환경 실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SBS, SBS A&T, 스튜디오프리즘, 스튜디오S 소속 조합원을 상대로 9월 22일부터 10월 1일까지 10일간 진행된 설문조사에 303명이 응답했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조합원 10명 중 6명 이상은 <노동 강도가 과하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3개월 평균을 내봤을 때, <주당 근무시간이 52시간 이상>된다고 답한 조합원도 10명 중 5명이 넘었다. 심지어 <81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답한 인원도 6.6%나 있었다. 3년 전 조사와 비교해도 81시간 이상 살인적인 노동을 하고 있는 조합원은 늘었다.(4.7% -> 6.6%)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이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지만, 초과 근무 수당을 입력할 수 있는 조합원 가운데 43.8%가 <모두 입력하지 않을 때도 있다>고 답했다. 상당수 조합원이 여러 사정상 과도한 노동을 하고도 WISE에 초과 근무시간을 입력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초과 근무시간을 입력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 조합원들은  △눈치가 보여서 △결재권자가 시간외 수당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해서 △퇴근 후 집에서 업무 보는 경우는 입력하기 애매해서 △입력 기간(10일)이 지나가면 하지 못해서 △너무 바빠서 등을 꼽았다. 

  자신의 근무 형태 내에서 일할 수 있는 최대 근무시간을 초과할 경우 △OFF 사용 △휴가 사용 등을 통해 근무 시간을 조정하는 조합원도 있었지만, △근무시간을 미입력하거나 △OFF내고 근무하는 식으로 사실상 무료 노동을 하거나 △근무시간을 이월해 입력하는 방식으로 우회했다.

  초과 근무시간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면 OFF를 사용하는 것이 제일 적절한 방법이지만, 아직도 <자율적 OFF사용이 어렵다>는 답변이 절반을 넘었다.   

  조합원들은 <자율적 OFF사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프로그램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이란 답을 하기도 했지만, △눈치가 보여서란 응답이 많았다. 고질적인 인력부족으로 인해 개인의 정당한 OFF사용조차 여러 사정을 고려해야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노사가 합의한 <시간외근무수당 및 유연근무제 협약>은 장시간 연속 근무를 하는 직원들의 필수 휴식시간을 보장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일부 예외가 있을 수 있지만, 1회 근무시간은 13시간 이내를 원칙으로 하며, 다음 근무가 시작되기 전까지 최소 8시간의 휴식시간은 보장해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설문조사에서 <장시간 근무 시간 후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고 있지 않다>고 답한 비율이 50%에 육박해 노동자의 건강권이 위험 수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조합원들은 장시간 근무를 하고도 충분한 휴식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유로 △업무 수행 인원 부족 △기한 내 마쳐야할 업무가 많아서 △상사의 지시 혹은 부탁 등을 이유로 꼽았다.

  특히 충분한 휴식을 보장해야할 상사가 오히려 부당한 연속 업무를 지시하거나 부탁하는 등의 <유연근무제와 관련해 상사나 관계자로부터 부당한 지시나 요구, 부적절한 부탁 등을 경험했다>는 답변은 30%에 달했다.

  <전혀 없다>는 답변이 70%인 점은 다행이지만, 간혹 발생하는 부당한 지시나 요구는 상식 범위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조합원들은 △본인 임기 중에는 리프레시 휴가를 사용하지 말라고 지시 △철야 근무로 퇴근한 이후에 업무 지시 △업무량 상관없이 무조건 시간 내 완수 지시 △연장 근무 강요 △주말에 무조건적인 대기 지시 등을 경험했다고 토로했다. 

  <시간외근무수당 및 유연근무제 협약>에서 노사는 “선택•재량A•재량B 근무자의 최저 OFF일은 월 6일로 한다”고 합의했다. 이론상 무제한 노동이 가능한 재량A라 할지라도 최소 월6일의 휴무를 보장해 극한의 노동 환경은 막자는 취지다. 하지만 이번 설문조사에서 월평균 <한 달에 5일도 쉬지 못하는> 조합원이 34%에 달했다. 계엄 사태와 대선 이벤트가 이어진 여파로 해석된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란 가치가 무너지는 수치인 것은 물론 직원 개개인의 건강권이 침해되는 수준이다. 

  유연근무제란 주 52시간 제도가 미디어기업의 특수한 업무 환경을 도저히 담아낼 수 없다는 인식 하에 최소한 법적인 틀 내에서 노사가 합의한 기형적인 제도다. 그런 만큼 과도한 근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필수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그런데 이번 설문조사에서 <시간외수당이나 유연근무제 수당이 부적정하다>는 답변이 무려 72%에 달했다. 3년 전 조사에 비해 10%포인트 넘게 수치가 상승했다.  

  조합원들은 시간외수당과 유연근무제 수당이 적정하지 않은 이유로 △물가상승 △노동 강도 대비 턱없이 부족 △근무시간 입력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액수가 지나치게 적음 등을 꼽았다. 특히나 △법적으로 시간외수당은 통상임금의 1.5배여야 함 등의 법에 따른 적정 수당 지급을 요구하는 조합원이 많았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3년 전 조사 결과와 마찬가지로 인원 부족과 과도한 근무, 상사의 부적절한 근무 지시 등이 여전한 노동환경의 문제점으로 꼽힌다. 오히려 부당한 근무 지시 등을 경험한 수치는 늘었다. 특히 노동환경 악화가 수년째 이어지면서, 번 아웃을 경험했다는 조합원은 10명 중 7명에 달했다. 

  노동조합은 <시간외근무수당 및 유연근무제 협약>의 유효기간 3년을 앞두고 사측과 협상에 나선다. 조합은 조합원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고, 개개인의 건강권이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도록 이번 협상에서 최선을 다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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