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일찍이 없었던 시민혁명의 물결이 거세고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상처받고 박탈당한 이들을 끊임없이 벼랑으로 내몰았던 폭정의 이면에 감춰진 권력의 추악한 가면이 드러나자 주권자들은 자신들이 선거로 부여했던 권력을 회수하려 나섰다.

‘박근혜 퇴진!’ ‘박근혜 구속!’ 이라는 구호가 백발노인부터 초등학생까지 입에서 입으로 거침없이 튀어나오는 광화문 한복판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구호가 있다. ‘언론 부역자 척결하자!’

SBS는 이 구호에서 비켜서 있는가?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다.

SBS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동안 무려 4명의 홍보수석과 1명의 대통령 실장, 1명의 정무수석을 배출했다. 특히 검찰수사까지 거부하며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는 박근혜 정권의 막장드라마에 막차 올라타듯 합류한 자들을 보고 있자니 창피해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이런 문제적 인물들은 대부분 사장, 혹은 이사급 이상의 임원 출신으로 SBS의 경영에 깊이 관여했던 자들이다. 이들이 SBS 경영을 좌지우지한 기간 동안 지상파 방송 SBS는 끊임없는 경쟁력 약화로 설 땅을 잃어왔다.

잘못된 디지털 전환 방식 채택으로 지상파 직접 수신율이 수직 추락하며 영향력 하락과 수익구조 악화의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들었고, 국민적 저항은 물론 SBS 구성원들이 격렬히 반대했던 미디어법 제정 과정에서도 대주주의 지분제한을 완화해 주겠다는 눈깔사탕을 받아먹고 지상파 시장 붕괴에 스스로 납덩이를 달아버렸다. 한결같이 회사의 이익을 위해 권력에 밉보이면 안된다는, 단 한 번도 과학적으로 검증된 적 없는 종교적 맹신 수준의 경영 판단이다. 박근혜 정권 들어 이런 맹신은 보도와 교양 등 제작 영역에 광범위하게 직접 영향을 미치며 SBS를 더욱 심각하게 망쳐왔다.

SBS가 권력에 부역해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는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박근혜-최순실 정권의 허망한 국정철학과 별 다를 바 없는 망상이다. 이런 망상은 결국 SBS 구성원들을 최순실의 박근혜 인형놀이나 온 국민에게 중계하도록 만들며 이 천인공노할 게이트의 공범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망상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오히려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공고히 수호하고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이행하는 것만이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경쟁력임을 눈길도 주지 않던 jtbc의 성취가, 그리고 ‘그알’에 대한 폭발적 관심이 이제 대의명분을 넘어 구체적인 수치로 증명하고 있다.

불행히도 오랜 세월 동안 이런 망상은 SBS를 철저히 지배해 온 조직문화로 굳어져 버렸다. 이를 넘어서자고 했던 지난 여름의 조직 개편은 불행히도 권력의 심기를 관리하며 구성원들의 입을 막고 자율과 창의를 말살해 온 망상적 조직문화를 뿌리뽑는데 여전히 실패하고 있다. 입으로는 혁신을 말하면서 몸으로는 부역을 일삼는 구체제의 잔재는 여전히 남아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더 물러설 곳이 있는가.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 작금의 위기는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지만 남겨두고 있다. 망상이 지배하는 과거에서 허우적거리다 고사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과 제도, 문화에 대한 진정하고 전면적인 세대교체와 혁신을 통해 바늘구멍 같은 살 길을 넓혀나갈 것인가.

해답은 명확하다.

이제 완전히 실패로 결론 난 부역의 문화를 뿌리부터 캐내지 않으면 거센 시민항쟁의 파도가 SBS를 흔적도 없이 삼켜 버릴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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