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SBS의 지배구조 변동은 일견 복잡해보이지만 대주주인 윤석민 회장이 경영권 강화라는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지상파 방송인 SBS와 그 구성원들에게 리스크를 모두 떠넘겨 버린 게 사안의 본질이다. 이로 인해 SBS는 자회사 지분 소유에 문제가 발생하였으며 미디어 지주회사 체제를 해체해야 할 위기에 놓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통위는 지난 6월 TY홀딩스 전환을 승인하며 무거운 이행조건을 부가했다. 핵심은 2가지다. ‘최대주주가 제출한 이행각서를 성실히 이행'할 것과 ‘종사자 대표와 성실하게 협의해 경영계획을 마련’하라는 것. 통상 재허가는 사업자가 제출한 계획과 자료만으로 심사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주주와 경영진이 SBS에 손해를 끼치는 결정을 내린 주체이므로 그것만으로는 신뢰할 수 없다, 대주주는 각서를 내고 불이익을 떠안게 된 구성원들의 동의를 받아오라, 그래야 재허가를 할 수 있다는 게 방통위 승인 조건의 골자이다. 윤석민 회장이 제출한 이행각서에 더해 종사자와의 협의라는 이중 안전장치를 설치한 것이다. 

따라서 협의의 주체는 각서에 직접 서명한 대주주 윤 회장임이 자명하다. 윤 회장이 협의를 해태한다면 명백한 승인 조건 위반이다. 지금 윤 회장의 행태를 보면 TY홀딩스 관계자들을 내세워 몇 차례 형식적인 협의를 거치고 협상 일지 정도를 내면 문제가 없을 거라 오판하는 듯하다. 어림없는 이야기다.

이번 재허가 심사는 결코 지나가는 통과의례가 아니다. 2004년에 준하는 중대기로이다. SBS 지주회사 체제는 2004년 재허가 파동 이후 시민사회까지 참여해 만든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위한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이 합의를 대안도 없이 멋대로 허물어 놓고 쉽사리 재허가를 받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주회사 체제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야 허가장을 받을 수 있다. SBS노사는 물론 관계당국과 시민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SBS본부가 끝장 집회에 나선 것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는 대화조차 거부하고, 허송세월하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지상파 위기가 심각하다. 사업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규제완화를 해결책으로 호소한다. 방통위는 산업성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민방 제도를 재편한다는 방침이다. 과거 지상파가 지배하는 환경에서 만들었던 방송 제도를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맞게 개선하는 것은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민간영역에서 시장 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도 동의한다.

하지만 낡은 제도만 위기의 원인일까? 규제를 풀면 민방이 살아날까? 민방 위기의 구조적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대주주 문제다. 민영방송이 미디어 콘텐츠 기업으로 성장하는 길을 가로막고, 방송을 다른 사업부문 이익을 위한 부대사업으로 전락시킨 장본인이야말로 대주주들이기 때문이다. 흔히 대주주가 방송의 공익성을 훼손한다 말하지만 그들은 미디어 기업으로서 민방의 시장적 가치를 파괴한다.

SBS가 대표적 사례다. 정치권력에 부역하여 언론기업의 생명인 신뢰성을 훼손한 자, 독립적·전문적 경영을 위한 지주회사 체제를 대주주가 수익을 빨아먹는 천민적 비즈니스 모델로 전락시켜 버린 자가 누구인가. 다름 아닌 태영건설과 윤 씨 일가였다. 청주방송 사례에서 보듯이 지역 민방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이와 같은 대주주의 방송사유화, 수익도구화를 그대로 둔 채로 민영방송의 산업성과 효율성 제고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재허가 심사는 SBS를 넘어서 민영 지상파 방송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방통위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여 독립성이 보장되는 미디어 전문 경영체제를 제도화해야 한다. 여기에 지상파 민영 방송의 미래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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