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미래를 위한 6대 요구

"SBS 재무건전성 부실을 초래하거나 '미래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SBS 자회사, SBS 미디어홀딩스 자회사 개편 등 경영 계획을 마련하고, 동 경영계획을 6개월 내 방통위에 보고할 것 – 동 경영계획 수립 시 종사자 대표와 성실하게 협의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방통위에 보고할 것”
- 방송통신위원회의 TY홀딩스 승인 조건, 지난 6월 1일

방통위의 조건은 SBS의 주인을 미디어홀딩스에서 TY홀딩스로 바꾸더라도, 즉, SBS가 혹시라도 윤석민 회장의 직접 지배를 받게 되더라도, SBS의 재무 건강성과 미래 가치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TY홀딩스는 기업 안정성을 해쳐 SBS구성원에게 오롯이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방통위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방통위는 '허가 조건'이란 이름으로 대주주가 하지 말아야 할 방어선(防禦線)을 구축한 것과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지렛대 삼아 SBS가 나가야 할 전진선(前進線)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미디어 위기 속에서 SBS 구성원들이 애태우지 않고 노동할 수 있도록, 결국, 우리의 일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우리의 '미래'와 '신뢰'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우리는 이 작업을 노동조합의 '6대 요구안'으로 명명한다. 방통위의 TY홀딩스 사전 승인 조건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SBS 미래 혁신의 주춧돌이다.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위한 마중물이 이미 고갈됐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근시안적 비용 삭감으로는 우리의 생존권과 SBS의 미래를 보장받지 못함을 깨닫는다. 어려운 미디어 환경 변화에 발맞춘 혁신적인 두 번째 창사가 필요하다. 대대적 재투자와 조직 혁신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조금씩 만들어가야 한다. 물론 그 중심에는 방송 독립성과 투명성 강화를 통한 신뢰 회복이 자리잡아야 한다.

앞으로 제시할 6가지 요구들은 우리가 처한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리고 이건, 노동조합이 늘 강조했듯 대주주가 책임지고 풀어야 할 문제들이다. 그래서 방통위도 대주주에게 각서까지 받은 것이다.

새로운 30년, 우리는 다시 꿈꿀 권리와 의무가 있다.

 

이제 우리, 다시 미래!
지속 가능한 미래 만들기

 

▶ 첫 번째 요구 : 대대적인 재투자

투자가 줄어들면 제작이 축소된다. 제작이 축소되면 콘텐츠를 만드는 구성원들의 일감과 근로 의욕 역시 저하된다. 자연히 콘텐츠 경쟁력은 하락한다. 이는 다시 수익 감소로 이어지고, 또 다른 비용 축소를 야기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런 기업은 결국 시장에서 도태되고 사라져간다. 기업 쇠락의 사이클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SBS의 자화상이다. SBS는 비상 경영이라는 미명 아래 제작비와 업무추진비 등 비용 삭감을 통해 근근이 버티고 있을 뿐이다. 격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생존 가능한 비전과 전망을 제시해야 할 자들은 아무 말이 없다. 이제 흑자가 난들 우리의 불안한 미래를 바꾸지 못한다. 그것이 콘텐츠 경쟁력 강화의 산물이 아니라 대대적인 비용 쥐어짜기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언 발에 오줌누기도 안되는 임시방편으로는 우리의 미래를 약속 받을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여파로 미래 생존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지상파 방송은 취약해진 제작비 구조와 미래 비전 상실 속에 OTT 기반 경쟁에서도 급속하게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다. 혁신의 시간은 빠르게 소진돼 버렸다.

우리는 이 악순환의 고리, 어디쯤을 끊어내야 한다. 비관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건 우리 스스로의 숨통을 조이는 일일 뿐이다. 무엇이든 해야 하고, 해내야 한다.

그 '자구 노력'의 첫 필요 조건으로 '과감한 재투자'를 요구한다. 물론, 재투자는 대주주의 몫, 자본의 자구노력이다.

노동조합은 SBS 콘텐츠 재투자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대주주에 대해 여러 차례 문제제기를 해왔다. 30년 간 태영그룹의 SBS 투자 총액은 약 380억 원. SBS는 구성원들의 피땀으로 지금까지 버텨왔고, 태영그룹과 대주주 일가는 그런 SBS를 발판 삼아 수 조원대의 자산 팽창에 성공했다.  사측은 ‘유언비어’라고 헐뜯기에 급급하지만, 태영그룹의 초고속성장이 SBS없이 가능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천억 원 가까운 배당 이익, 4천억 원 대의 SBS 수익 유출은 빙산의 일각이다. 대기업의 방송사 투자 제한 요건이 3조에서 10조로 확대된 이후, 태영건설은 자산규모가 2.6조에서 9.7조로 폭증했다. 같은 기간 SBS는 성장이 멈췄고, 비용삭감은 일상이 됐다. 위기 극복과 조직의 미래 혁신을 위한 대주주의 역할은 전무한 상태다. 그럼에도 SBS 구성원들은 비용 감축을 통한 고통 분담을 해왔다. 제작비는 줄었고, 업무추진비는 깎였다. 도처에 줄어들고 깎인 것 투성이다. 고통을 분담해왔던 우리가 대주주에게 재투자를 요구하는 이유다.

글로벌 시장에서 최고의 콘텐츠 품질로 각광받는 HBO는 경쟁력 하락의 위기 국면에서 비용 관리가 아니라 콘텐츠 투자를 6배나 급격히 늘려 승부수를 띄웠다. 오늘날 콘텐츠 왕국이 된 HBO의 사례는 저절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국내의 경쟁자들도 다르지 않다. CJ와 JTBC 등 우리를 추월하며,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자리매김한 경쟁사들은 오랜 적자를 감수하고 공격적인 규모의 콘텐츠 투자에 나서며 경쟁력 강화에 전력하고 있다.

태영그룹의 자본 동원 능력은 충분한 것으로 판단한다. 최근 몇 년 간 영업이익 합산 규모가 1조 원을 넘고 있고,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부실 자회사인 인제스피디움엔 1천억 원대의 자본확충과 운영자금 대여까지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태영그룹의 황금거위였던 SBS에 대한 재투자는 0원이다. 콘텐츠 기업에게 콘텐츠 투자는 너무나 당연한 대안이다.

지금의 미디어 시장이 '잭팟 없는' 환경이라고 비관할 필요도 없다. 쉽게 생각하자. 콘텐츠 투자 말고는 답이 없다.

콘텐츠 기업에 복무하는 우리는, 제작비에 허덕이지 않고 콘텐츠를 만들 권리가 있다. SBS 구성원들의 역량은 동종 업계 최고 수준이다. SBS 경영, 기술 직군 구성원들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타고난 감각이 있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늘 타사 대비 높은 효율을 달성했다. 제작, 보도 직군 구성원들은 늘 현장에서 타사를 압도하며 상을 휩쓸어 왔다. 우리의 조직은 능률적이고, 단단하며, 유능하다.

지난 30년, 이런 우리를 지렛대 삼아 폭발적 성장을 구가한 대주주는 이제 새로운 30년을 위해 SBS에 지렛대가 되어주길 바란다. SBS에 대한 과감하고 집중적인 재투자로 ‘건설자본의 윤활유’가 아닌 대한민국 최고의 콘텐츠 강자로 SBS를 성장시킬 의지와 비전을 보여주기 바란다. 윤석민 회장이 지금까지 SBS를 쥐락펴락하며 수익유출과 전횡으로 조직을 멍들였던 과거를 훌훌 털고 방송산업을 제대로 계속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이를 증명할 유일한 방법은 대대적인 재투자뿐이다.
  
투자 규모는 대주주와의 논의를 통해 조율할 사안이다. 다만, SBS에서 부당하게 유출된 방송 수익에 준하는 규모로 제시한다. 30년 간 SBS 구성원들의 피땀과 지상파 방송 사업자의 지위를 통해 태영그룹의 초고속 성장을 이뤄낸 것에 대한 최소 수준의 보상일 것이다.

 

두 번째 요구 : 전면적인 콘텐츠 혁신

대대적인 재투자는 낡은 콘텐츠 보수가 아닌 콘텐츠와 조직 혁신에 쓰여야 한다.

지난해 노동조합 미래위원회 보고서에 그 실행의 단초가 있다. 지난해 노동조합은 미래위원회를 구성한 뒤, 현장에서 땀 흘리는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 요구 안을 발표했다. 절박함 속에 모아진 아이디어들이었다. 요구 안의 핵심은 미래 경쟁력의 주춧돌이 콘텐츠라는 것, 변화하는 콘텐츠 소비자와 시청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고 반영할 대대적인 콘텐츠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요구안은 꽤 구체적이었다. 대의원회를 열어 결의문까지 발표했지만, 이런 요구들은 결국 묵살되고 말았다. 대주주에게 요구하는 자구 대책이 대대적 투자라면, 콘텐츠 혁신 계획은 SBS의 근본적 경쟁력과 중장기적 미래에 무관심한 경영진에 대한 자구 대책에 가깝다.

재투자와 콘텐츠를 연계시키는 건 독립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기존 경영진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며, 기획-제작-편성까지 전권을 부여한 콘텐츠 혁신 조직이 가동돼야 함을 제안한다. 독립적인 '콘텐츠 혁신 위원회'다.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EBS의 사례를 준용한 것이다.

콘텐츠 혁신 위원회는 지금처럼 50~60대, 남성 위주의 소수가 주도하는 틀을 탈피해, 수동적 위치에 있던 대다수의 구성원을 능동적 의사 결정 행위자로 올리는 제도적 기반이다. SBS 구성원의 집단 지성에 기반한 콘텐츠 혁신이다. 자연히 이를 위한 조직과 인사 쇄신은 체념과 무관심의 권태 대신 새로운 박동, 일할 맛이 가득한 설렘으로 우리를 깨울 것이다.

 

이제 우리, 다시 독립!
방송 독립과 투명성 강화

 

세 번째 요구 : 임명동의제도 강화 및 확대

지난 2017년 10.13 합의로 도입된 SBS의 사장 임명동의제도는 단순히 사장 임명이라는 대주주 권한을 제한하는데 있지 않다. 사회적 공기인 지상파 방송사 사장 임명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제도적 틀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방송 사유화와 극단적 상업성 추구 때문에 떨어졌던 신뢰를 회복하고,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기능이 있다.

하지만, TY홀딩스 체제는 다시 대주주가 SBS를 직접 지배하는 과거 회귀와 소유 경영 분리 체제의 파괴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사장 임명동의제도의 사문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임명동의제도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가령, 재적 '60% 반대' 기준을 '40% 찬성'으로 전환해 기권표로 인한 의사 왜곡을 차단하는 방안, 재적 과반 찬성 등으로 강화하는 방안이 논의될 수 있다. 또 임명동의 대상 경영위원의 범위를 넓히는 방안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 방송 독립과 소유 경영 분리라는 SBS의 핵심적인 미래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방통위의 TY홀딩스 사전 승인 조건에 정확히 부합하는 요구이다.

 

▶ 네 번째 요구 : 독립 감사제도 도입

SBS는 지난 2008년 이후 회사의 투명성을 감시하고 경영진과 대주주를 견제하는 감사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전혀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감사위원들이 이사회 구성원인 사외 이사들이어서 자신의 경영 판단을 스스로 감사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공정경제 3법 가운데 핵심의 하나가 바로 이사회와 감사기능의 분리를 위한 대주주 의결권 제한이다. 정확히 SBS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가령, 부천영상단지 공모 탈락 등 논란이 야기됐을 때조차 감사위원회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업무 적정성에 대한 감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고, 단순 회계 감사만 반복적이고 기계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또한 사내 감사 조직은 감사위원회가 아니라 사장 직속 조직으로 편제돼 독립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없는 환경이다. 감사 조직이 감사 대상인 사장의 편의에 따라 운영되면서 경영진의 일탈 가능성이 자주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 역시 조직 운용의 비효율을 야기한다. 대주주와 경영진, 구성원 간의 불신이 누적되면서 미래 혁신을 위한 조직 문화와 토양이 유실되는 것이다.

우선 제 기능을 상실한 감사위원회를 완전히 폐지하고 노동조합 혹은 소액주주가 추천하는 독립적인 상근 감사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감사 조직을 상근 감사 직속으로 재편해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감사와 이사회 분리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를 선제적으로 도입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이제 우리, 다시 신뢰!
신뢰 회복의 조건

 

다섯 번째 요구 : 직원들의 경영 참여 보장

자본은 늘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절대악으로 표현하며 강력히 반발하곤 한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SBS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핵심적 동력은 노동조합이 만들어 왔다. 대주주의 수익 유출 행위를 차단하고 유출된 자산을 일부 회복하는 등 SBS 조직과 주주들의 장기이익을 보호하는 구사대 역할을 수행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윤석민 회장 취임 이후 단계적으로 이뤄진 소유 경영 분리 약속 파기와 독립 경영 추진 인사들에 대한 보복성 축출, 노조 추천 사외이사 축출 등의 과정으로 볼 때 향후 SBS의 경영 독립과 투명성 강화와 노사 간 신뢰 가능한 체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구축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또한 태영그룹의 지상파 방송 세습 지배에 따른 방송 사유화와 공공성 파괴를 막고, 오랜 노사갈등 관계를 청산하며, 미래 환경에 걸맞는 경영 모델을 새롭게 마련할 필요도 있다.

이를 위해 직원들의 경영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노동이사제는 그 방법이 될 것이다.

보통 노동 이사는 직원 300명 당 1인을 선출하며, 일상 업무는 그대로 수행하면서 이사 업무를 병행한다. 이사 임기 동안 노동조합원 자격은 상실된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은 현 정부의 공약 사항이기도 하며 지금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민영방송이라도 사회적 공기(公器)임을 감안한다면, 급진적인 요구도 아닐 것이다. 노조 추천 사외이사 추천 제도도 손질할 필요도 있다. 지난 3월 사측은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를 거부하면서 무력화됐다. 사실상 주총 전에 사측이 마음대로 걸러낼 수 있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었다.

불온하고 반 SBS적인 기업가치 파괴 행위를 청산하고 신뢰와 투명성을 담보하는 경영 문화를 정착시켜 오랜 노사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청산하는 지렛대로서 직원들의 경영 참여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 항목이다.

 

▶ 여섯 번째 요구 : 노사 관계 정상화를 위한 책임 있는 조치

이 모든 요구들은 대주주와 경영진, 노동조합, 서로의 신뢰를 통해 시작될 수 있다. 윤석민 회장 체제 이후 형성된 노사 갈등의 근본적인 해소가 필요하다.

신뢰를 재구축하고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사측의 책임 있는 상징적 조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3월 이사회 이후 노사 관계 악화를 부추겨 온 인사들에 대한 인사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SBS의 미래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노사관계 구축을 위해서라도 이들에 대한 결단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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