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성폭력 사건 대응 매뉴얼 설문조사
언론노조 SBS본부는 지난 8일(화) '사내 성폭력 사건 대응 매뉴얼'과 그 운영에 대해 조합원 설문조사를 시작했다. 노사 간 단체협약 협상을 앞두고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취지다. 조합원들의 의견은 향후 관련 매뉴얼을 만드는 데에도 참고 자료가 될 예정이다. 설문조사 시작 반나절 만에, 50명 넘는 조합원들이 응답하는 등 뜨거운 관심이 이어졌다. 많은 응답자들이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고 장문의 의견을 제출하는 등 제도 개선 필요성에 공감을 나타냈다.
● 매뉴얼 개선 설문조사
그동안 사내 성폭력 사건 대응 매뉴얼 개선의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 자체만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다. 문제 제기를 결심하는 데에도 많은 고민이 뒤따르지만, 절차가 시작된 이후엔 엄청난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사건 신고에서부터 피해사실 진술, 가해자 처벌에 이르기까지 피해자의 직접적인 개입이 불가피하다. 사건 처리 과정에서 비밀유지 등에 대한 지속적 우려와 함께, 2차 가해로 인한 실질적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에, 전문가들은 문제 제기 과정의 많은 부분을 사전에 제도화함으로써 피해자의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달 노동조합 대의원 간담회에서도 다수의 조합원들이 이와 관련해 제도 개선을 건의한 바 있다.
사측이 제공한 <SBS 성폭력 예방 매뉴얼>에 따르면, SBS는 현재 각 본부와 실/센터별로 '성폭력 신고 도우미'를 선정해 운영 중이며, 직접 대응이 어려운 경우 '선후배, 동료와 상의하라'고 안내한다. 신고처는 boho@sbs.co.kr(02-2113-3115) 혹은 목동 사옥 21층 인사팀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SBS의 규정은 공공기관이나 타기업과 비교했을 때, 특히 피해자 보호 관련 조치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조합원들의 설문 답변 내용 가운데에도 ▲사건 발생 시 사측의 절차 안내 ▲조사 참여자의 전문성 및 객관성 제고 ▲가해자와 분리 조치 매뉴얼 ▲비밀 유지에 대한 실질적 제도 보완 등을 당부하는 의견이 많았다.
● 타사는 어떻게?
언론사들은 이미 사내 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수정, 보완했거나 진행 중이다. KBS는 2년 전에 언론사 최초로 성평등 전담 상설 기구로서 'KBS 성평등센터'를 설치한 바 있다. 또한 업무 전반의 성평등 구현을 위한 '성평등 기본규정'을 제정해 시행 중이다. KBS는 해당 규정을 통해 기존 성희롱 예방 지침보다 보호 대상을 확대했고,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엄정한 처리 절차를 마련했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인적 보호대상에 포함했으며, 가해자의 징계 시효를 늘리고 2차 가해를 징계하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KBS의 성폭력 사건 대응 매뉴얼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신고·조사'에 앞서 공식 절차로서 '상담'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성폭력 상담 20년 이상 경력자가 성평등센터 상근직으로 근무하며 전문 고충원 상담 역할을 한다. 피해자는 상담 과정에서 사건처리 절차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안내 받고, 관련해 질문할 수 있다. 심리, 의료 지원도 보장된다. KBS는 또한, 문제 해결의 모든 단계에서 조사 참여자 일체를 상대로 '비밀유지 서약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조사 참여자가 비밀 누설을 할 경우 2차 가해로 규정하고 성평등센터장이 징계를 요구할 수 있는 행위로 명시했다. 2차 가해 행위 발생 시 센터 측이 즉각 조사에 나서는 후속 조치도 가능하다. 사건 조사를 마친 후엔, 외부전문가가 포함된 성평등위원회 심의를 통해 전문적 평가와 객관성을 확보한다.
한겨레는 지난해 국내 언론사 가운데는 최초로 편집국장 직속 기구로서 '젠더 데스크'를 신설했다. 성평등 문화를 확산하고 젠더 이슈를 발굴하는 역할로, 성인지 감수성에 비춰 사내 기사를 모니터하고 개선점을 구성원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신문도 같은 해 '서울젠더연구소'를 출범하고 젠더 이슈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담아내고 있다.
이번 설문조사의 경우, 비(非)조합원도 관련 사항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답변 제출 방법을 안내 받았다. 실제 사측이 밝힌 매뉴얼에 따르면 "SBS 직원뿐 아니라 프리랜서, 작가, 파견사원, 협력업체 등 SBS를 위해 일하는 모든 분들이 보호대상"이라고 명시돼 있다. 따라서 노조는 공식적인 방법으로 확보한 연락처에 한해 파견사원 등에게도 관련 문자를 보내도록 조치했다. (파견사원 기준 총 237명: SBS-93명, SBSA&T-138명, 스튜디오S-6명) 향후에도 노조는 SBS 울타리 내에서 일하는 모든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의견 청취를 진행할 예정이다.
● 철저한 보안 유지
설문조사는 마감 기한을 따로 정해두지 않았으며, 제도와 관련한 조합원의 건의 사항이 있을 경우 상시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설문조사 응답 내용은 1인(노동조합 성평등위원장) 외에는 열람이 불가하며 철저히 보안이 유지된다. 응답자가 답변에서 스스로를 밝히기 전까지, 열람인은 응답자의 신원을 절대 확인할 수 없다. 설문 결과는 당사자 외엔 특정할 수 없는 수준의 일반화 작업을 거쳐, 맥락을 알 수 없는 일부만 인용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