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대주주 투자 의무' 재허가 조건으로 못박아

조합원들의 요구가 옳았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초유의 관심 속에 진행된 SBS에 대한 재허가 심사 결과는 SBS 조합원들의 요구가 대폭 수용되면서 마무리됐다.

‘TY홀딩스 체제 출범이 SBS에 아무런 영향도 없을 것’이라는 논리로 윤석민 회장 직할 체제 구축에 가속도를 내려던 사측의 구상은 SBS 구성원은 물론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재허가 심사위원들과 방통위 상임위원 등에게 전혀 설득력이 없었음이 거듭 증명된 셈이다.

지난 1월 태영건설이 TY홀딩스 체제 전환으로 옥상옥 지주회사 체제 강행을 공시하면서, SBS 자회사의 공정거래법 위반 등 법적 문제를 발생시키고 건설 자본의 방송 지배력 강화에 대한 사회적 우려, 소유 경영 분리 체제 파괴에 대한 비판이 들끓었으나, 대주주와 SBS 사측에겐 '소 귀에 경읽기'였다.

대주주와 사측은 SBS 구성원들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의 문제제기를 유언비어 취급하며 적대적 대치로 일관하고, 미디어 격변의 파고를 넘을 대대적인 투자 확충은 외면한 채 대주주의 방송지배력만 강화하는 낡은 지배구조 아래 SBS를 밀어 넣으려 했으나, 이러한 시도는 결국 재허가 심사 과정을 통해 사실상 '불가' 판정을 받은 것이다.

결국 TY홀딩스 출범을 전후한 지난 1년, SBS를 우리 손으로 지켜내겠다는 조합원들의 굳은 의지와 중단 없는 투쟁이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이며, 이는 새로운 30년, 지속 가능한 미래를 구축하기 위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방통위가 SBS에 부가한 재허가 조건의 핵심 내용과 의미는 다음과 같다.

 

① 대주주 투자 의무 부가
      
 

UHD 콘텐츠 등 고품질 콘텐츠 제작을 통한 SBS 최다액 출자자의 투자 등 기여방안을 담은 미래발전 계획을 SBS 종사자 대표와 협의하여 마련하고 21년 6월말까지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할 것.

 

이번 부가된 재허가 조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창업과 기업공개 국면을 제외하고 변변한 재투자없이 SBS 수익 유출로 지속 가능한 미래 구축과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한 대처에 지속적인 문제를 야기시켜 왔던 대주주에 대해 ‘투자 등 기여방안’을 내놓으라고 못박았다. 이는 대의원 결의와 서명운동 등을 통해 대주주의 재투자를 강제해 달라고 요구했던 SBS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재허가 심사 과정에서 상당부분은 관철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11월 25일 회동 당시, 윤석민 회장과 TY 홀딩스 측은 기존의 자본금 출자와 SBS 이익잉여금을 두고 ‘현재도 투자가 돼 있는 상태’라는 납득할 수 없는 논리를 전개했으며, 방통위에도 같은 입장을 전달했으나 방통위는 SBS 구성원들의 입장에 호응한 것이다.

윤석민 회장도 당시 회동에서 재투자 문제에 대한 종사자 대표 측과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방통위의 판단을 따르겠다는 취지로 발언한 바 있다.

 

② 지배구조 개편 관련

 

SBS와 SBS 최다액출자자는 SBS의 재무건전성 부실을 초래하거나 미래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SBS 최다액출자자의 최다액출자자 및 SBS 종사자 대표와 함께 자회사 개편 계획을 포함한 SBS 지배구조 개편 계획을 성실히 협의하고 그 결과를 ‘21년 4월말까지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할 것 – 협의 과정에서 방송통신위원회의 요청이 있을 경우 지체없이 협의내용 등 진행상황을 제출할 것.

 

지난 6월 1일, TY홀딩스 사전 승인 조건으로 부가된 ‘종사자 대표와의 성실 협의’ 이행을 두고 대주주와 사측은 한결같이 TY홀딩스체제 출범으로 인한 지배구조 개편 문제가 종사자 대표와의 대화 의제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방통위는 SBS 자산과 기능을 분리해서 만든 SBS 미디어홀딩스의 처리 방안을 핵심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 문제 또한 SBS 구성원들과 성실하게 협의하라고 못 박았다. 윤석민 회장 지배력 강화를 위해 만든 TY홀딩스 체제가 야기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SBS 구성원들의 피땀으로 일군 미디어홀딩스 자산과 기능을 TY홀딩스로 흡수하는 방식은 사실상 SBS 구성원들을 다시 한 번 기만하는 비상식적 방안이다.

대주주와 사측은 TY홀딩스 체제와 무관한 자회사 개편 방안을 SNS로 통보하는 등의 조악하고 불성실한 태도로는 이번 재허가와 같은 결과를 빚거나, 방송사업자 자격에 근본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전향적으로 ‘성실 협의’에 임해야 할 것이다.

 

③ 방송 독립성과 공공성

 

TY 홀딩스 지배주주(방송법 제 8조에 따른 특수관계자 포함), TY 홀딩스 및 그 계열사에 유리한 보도, 홍보성 기사등을 통해 방송이 사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할 것
- TY홀딩스 지배주주(방송법 8조에 따른 특수관계자 포함), TY 홀딩스 및 그 계열사 관련 보도, 방송프로그램, 협찬, 광고 관련 사항을 방송관련 학회 등 공신력 있는 외부기관에서 평가받고 그 평가 결과를 매년 4월 말까지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할 것.

 

2004년 재허가 파동 당시 사회적으로 제기됐던 방송 사유화 문제는 이후 방송 지주회사 체제인 미디어홀딩스 체제 아래서소유경영 분리 약속 파기와 함께 최악의 수준으로 치달았다. 광명역세권 사업, 인제스피디움 등 건설 자본의 이익이 걸린 일에 늘 SBS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방송의 공적 책임을 내팽개치고 SBS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훼손해왔다.

향후 TY홀딩스는 공정거래법 상의 지분 규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창사 초기 태영건설이 SBS를 직접 지배하던 것과 같은 지배구조를 형성할 수 밖에 없다. SBS 직접 지배를 통해 방송을 다시 사유화할 가능성이 커진 만큼 이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대주주에 의한 방송의 사적 이용 금지를 명시한 조건이 부가된 것이다. SBS 방송 공공성을 지키고, 시청자 신뢰를 강화하기 위해 SBS 구성원들의 중단 없는 투쟁이 만들어낸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④ 경영 투명성과 독립성

 

경영의 투명성 및 자율성 보장을 위해 방송전문경영인 제도(대표이사) 유지, 주주와 방송법 제 8조에 따른 특수관계자가 아닌 독립적 사외이사 복수 위촉, 감사제도 강화 등을 이행하고 그 이행실적을 매년 4월 말까지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할 것.

 

지난 3월 주주총회를 통해 대주주와 사측은 노조 추천 사외이사를 축출하면서 지난 십여 년 간 SBS 경영 투명성과 독립성의 중요한 상징이었던 노사합의를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특히 노조 추천 사외이사 축출로 경영 감시를 위한 감사위원회가 사측 추천 사외이사들로 채워져 독립성을 전혀 담보하지 못한 채 대주주에 대한 견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방통위는 감사제도 강화 이행을 조건으로 부가해 SBS 경영 투명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라고 요구했다. 최근 국회에서 감사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만큼 이 기회에 SBS 사측과 대주주는 유명무실한 감사위원회는 해체해야 할 것이다. 대신 감사선임권한을 기타 주주 및 종사자 대표 측에 위임하는 결단을 통해 스스로 경영 투명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해야 한다.

 

⑤ 사회환원 관련

 

매년 기부금 공제 후 세전이익의 15%를 SBS 종사자대표와 협의를 통해 결정된 공익재단에 출연하여 방송분야 등에 환원하고, 그 이행결과를 매년 4월말까지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할 것.

 

그동안 SBS 사측과 대주주는 1990년 방송사업자 허가 때 제출한 ‘세전 이익 15% 사회환원 약속’을 이행한다는 명목으로 SBS 문화재단을 활용해 왔다. 그러나, 조선일보 출신 등 보수 일색의 이사진 구성과 불투명한 운영 등으로 관련 학계 등을 중심으로 사회환원은 표면적인 명목이고 실상은 태영건설 자본의 ‘쌈짓돈’처럼 SBS가 출연한 자금이 쓰이고 있다는 비판이 심심찮게 제기돼 왔다.

SBS 종사자들이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 SBS의 사회적 약속 이행 과정에서 SBS 구성원들의 공동 책임을 부과해 투명성과 합리성을 높이라는 것이 방통위의 요구라고 파악된다.

 

위와 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SBS 재허가 조건은 대주주 및 SBS 사측에 이행 책임이 있으며, 불이행할 경우 방송사업자의 자격 박탈까지 가능한 제재와 불이익이 뒤따를 수 있는 사안이다.

대주주와 사측은 이번 방통위 재허가 심사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진정한 의미의 ‘성실 협의’에 나서기 바란다. 지난 30년의 과오를 수정하고 새로운 30년, 미래 초석을 다질 노사 협력의 기반, 상호신뢰와 사회적 책임 이행의 기틀을 새롭게 다져야 할 것이다. 방통위가 부가한 재허가 조건의 이행 여부는 SBS의 미래 진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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