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대의 악습...상식 갖춘 기업에선 검토조차 않는 일”
“MB시절에나 유행했던 ‘단체협약 해지 통고’...그 불편한 진실”
“구시대의 악습...상식 갖춘 기업에선 검토조차 않는 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 32조 3항 단서는 단협 유효 기간 이후 신규 단협 체결 전까지 효력을 자동 연장하는 노사 협정이 존재할 경우, 노동조합 또는 사용자(사측) 중 어느 한 쪽이 ‘단체협약을 6개월 뒤 해지하자’고 통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노동법 전문가라는 노무사에게도 이 ‘단협 해지 통고’ 조항은 ‘실무적으로’ 매우 낯선 조항이다. 노사관계를 법률 자문하는 과정에서 해당 조항을 꼼꼼하게 들여다볼 기회는 거의 없다. 그 역사적 배경을 확인하려면 13년 전 이명박 정부 초기로 시계바늘을 돌려야 한다.
1996년 12월 31일 이른바 ‘정리해고법’, ‘복수노동조합’, ‘탄력적근로시간제’ 등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된 ‘노조법 개악’ 과정에서 ‘단협 해지권 도입’ 조항이 전격 신설됐다. 제정 이후 현실에서 활용된 예가 거의 없었던 이 조항은 2008년 MB정부 초기부터 공공부문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MB정부는 ‘노사관계 선진화’ 실천방안의 하나로 ‘법치주의 확립’을 제시하고, 공공기관부터 ‘모범적 사용자 역할을 할 것’을 강력히 주문했다.
특히 공기업 경영 평가 시 노사관계 평가점수의 반영비율을 상향 조정함으로써 ‘기관운영침해사항’ 등 소위 ‘법과 원칙’에 어긋나는 단협 조항의 개정이 필수사항으로 부각됐다. 기관들은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앞다퉈 ‘단협해지 통고’ 조항을 선택했다.
2009년 12월 28일 매일노동뉴스의 기사 일부를 살펴보면 단협 해지 통고는 “이명박 정부의 ‘노사관계 최대 히트상품’”으로 묘사됐을 정도다. 2012년 7월 복수노조가 허용된 이후엔 사용자가 강성 노조를 탄압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악용하면서 민간부문에도 실제 사례가 속출했다.
당시 사용자들은 겉으로는 ‘법과 원칙에 입각한 노사관계 재정립’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성실한 교섭을 통한 결론 도출이 아니라, 아예 단협을 해지해 결국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고 노사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내모는 최악의 카드로 악용했다.
법적으로 노조든 사용자든 단협 해지를 통고할 수 있지만, 상식적으로 노조가 투쟁의 결과로 어렵게 체결한 단협을 먼저 해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단협의 효력이 사라지더라도 개별 조합원들의 임금, 복지 등 노동조건을 정한 조항들은 개별 근로계약의 내용으로서 효력이 유지되지만, 노조활동을 보장하는 조항들, 특히 ‘전임자’, ‘조합비 공제’, ‘근로시간 중 조합활동’, ‘홍보활동’, ‘단체교섭 및 쟁의 절차 사항’ 등은 더 이상 효력이 없다.
그렇다보니 실제 ‘사용자에 의해’ 단협해지 통고가 이루어진 뒤 ‘무단협’ 상태가 된 사업장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단체교섭부터 노조 파괴에 이르는 과정이 매우 흡사하다. 단체교섭 과정에서 사용자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교섭을 해태하거나 개악안을 제시하고, 이후 단협해지 통고를 한 뒤 시간을 끌다가 6개월이 지나 단협이 사라지면 노조에 ‘전임자 복귀명령’을 내리는 수순을 밟는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과거 노조 탄압의 ‘단골 카드’로 활용되었던 단협해지 통고가 최근 10여 년간 현실에서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사용자에 의한 단협 해지 통보 이후 노사관계가 회복될 수 없는 길로 접어든 것은 물론, 그로 인한 회사의 대내외적 피해 역시 매우 막대했기 때문이다. 상식을 갖춘 기업들은 단협 해지 통보 사업장의 선례들을 ‘반면교사’로 삼았고 더 이상 그 카드를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SBS에서 벌어진 초유의 단협 해지 통보는 언론계는 물론 과거 실제 사례가 넘쳐났던 공공부문에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이례적 사례로 부각되고 있다. 회사는 최근 노동조합에 보낸 공문에서 2021. 10. 03. 단협 해지 이후 노동조합의 일상적 활동을 보장한 각종 조항들, 이를테면 ‘노조 전임자’, ‘조합비 공제’ 등 조항이 효력을 상실한다는 점을 애써 재확인했다.
과거 사용자들이 노조를 무력화하는 카드로 악용했던, 이제는 구시대의 악습으로 남은 이 조항이 지상파 방송사에서 부활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회사가 보내온 ‘단협 해지 예고 공문’은 그 궁금증에 대한 강력한 단서를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