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동의제 도입 배경: “말 뿐인 소유경영분리 아닌 최소한의 담보 장치”
1990년 창사 이래 SBS는 지속적으로 대주주의 방송 개입 비판을 받아왔다. 방송 사유화에 대한 시청자와 시민사회의 비판이 커지면서 등장한 게 ‘소유경영 분리’다. 권력에 굴종하고 자본의 이해에 충실한 보도 참사로 안팎의 비판이 커질 때마다 대주주는 소유경영 분리를 꺼내들었고, 비극적이지만 이런 선언은 모두 4차례(2005,2008,2011,2017)나 계속됐다. 말만으로 지켜질 수 있었다면, 같은 선언을 4차례나 할 필요가 없었던 게 자명하다.
2017년 8, 9월 보수정권 시절의 정권 편들기 보도 지침과 대주주의 방송 사유화(*노보 251호·253호 참고/과거 노보 열람 방법 하단 참고)가 뒤늦게 드러나자, 구성원과 시민사회의 비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SBS에 대한 신뢰 역시 추락했다. 더는 공허한 말로 소유경영분리를 통한 공정방송 실현이 어렵다는 걸 노사 모두 확인했고, 인정했다.
2017년 구성원들은 임명동의제보다 더 진일보한 제도를 요구했다. 대주주의 SBS 지분 의결권 신탁, 사장 추천제 등이 대표적이다. 사측은 반대했고, 지난한 협의의 시간을 거쳐야했다. 그 결과 재적 60%(보도 최고책임자는 50%)가 반대하면 임명을 철회하는 제도 도입에 노사가 합의했다.
사측이 “대주주와 노조, SBS의 구성원이 만들어낸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결과물(17.11.24 알림), 방송 독립의 역사를 새롭게 쓴 의미 있는 사건, 노사 화합의 본보기(17.12.1 알림)”라고 평가한 이유다.
■임명동의제 단체협약 명시..시민과의 약속, SBS의 각오와 의지
사측은 그해 10.13 합의서를 방통위 재허가 심사 때 제출했다. 이듬해(18년 8월)엔 합의와 별도로 규범력이 더 큰 ‘단체협약 14장’에 임명동의제를 새겨 넣었다. 시민사회와의 약속을 더욱 공고하게 하기 위한 SBS의 각오였다. 앞으로는 대주주의 방송 개입은 물론, 공정방송을 흔드는 그 어떤 시도도 막아내겠다는 SBS의 의지 표현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측은 각오도, 의지도 빈약했던 모양이다. 지난 1월 18일 공문을 통해 임명동의제 폐지를 요구했고, 이틀 뒤 10.13 합의를 일방적으로 해지 통보했다. 그리고 4월엔 SBS 31년사 초유의 단체협약 해지를 통고했다. 이를 막기 위해 노조는 9개월간 16차 실무협상(*상세 경과 4면 참고)을 통해 간극을 줄이려고 했고, 정형택 본부장과 박정훈 사장 등이 참여한 본교섭에서 양보안까지 제시했지만, 사측은 이마저도 거부했다. 결국 임명동의제는 도입 4년도 지나지 않아, 시행 2번 만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공정방송 실현 위한 최소한의 방어 장치..방송사의 공적 책임”
| 사측 주장: “임명동의제는 주주의 권한 침해, 상법에 위배 된다” “사장, 등기이사 등 경영진에 대한 평가와 임면권은 오직 이사회와 주주에게만 권한이 있고, 직원들에게 있는 게 아니다” |
사측이 임명동의제 폐지 사유로 내건 대표적 이유 중 하나다. 이는 4년 전 도입 때부터 사측이 내세운 논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방송사의 공적 책임, 임명동의제의 작동 방식, 상법의 존재 목적, 사회 제도의 변화만 이해했다면 이런 설익은 주장을 할 수 없다.
주주권 등 재산권은 무제한적으로 보장되는 게 아니다. 제도의 변천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지난해 ‘감사위원 분리선출, 대주주 의결권 3% 제한(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토지거래 허가제가 시행되기도 했고, 상생을 위해 대형마트 의무 휴업도 오랜 기간 이뤄져 왔다. 또 금융업 등 특정 업종에선 일정 기준을 불충족할 경우 대주주 자격까지 제한한다. 그 외에도 재산권을 제한하는 무수한 장치들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 이런 제도 모두 투명 경영과 지배구조 개선, 균형 잡힌 경제 생태계 보존을 위해 작동하고 있다.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사기업에도 이런 제도들이 적용되는데, 법을 통해 사회적 책무를 부여받은 언론사에서 임명동의제를 시행한다고 상법에 위반된다고 말하는 건 언론사의 공적 책임을 방기하는 것일 뿐이다. 특히 임명동의제는 구성원들이 대표이사를 직접 선출하는 방식도 아니다. 부적합한 인사를 임명할 경우 거부권을 제한적으로 행사하는 것일 뿐이다. 작동 방식까지 까다롭다. 투표 미참여자는 동의로 간주하고, 재적 인원의 60%가 반대해야 임명 철회가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공정방송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 소극적 장치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사측은 “소유경영분리의 핵심은 대주주로부터의 방송 독립이다.(19.7.26 사측 알림)”라고 직접 밝힌 바 있다. 방송독립에는 대주주의 방송사유화를 막는 공정방송 실현은 물론, 독립경영도 포함돼 있다. 임명동의제는 SBS가 대주주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을 막고, 대주주의 사익 추구를 경계하는 경영진의 방어 장치라는 뜻이다. 즉, 임명동의제는 사장 등 경영진에게도 대주주의 부당한 개입이 있을 때나, 내부의 부적절한 행위가 감지될 때 공정방송과 독립경영을 실현할 수 있는 명분과 수단이 될 수 있다. 노사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장치인데도, 고작 2번(17년, 19년)의 작동 끝에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