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들이 비판한 행위들, 언론사 SBS에서 벌어지다"
12년 전 단협 해지 통고가 유행할 때 언론이 전한 ‘무단협 수순’이다. 단협 해지권이 사용된 사업장에선 예외 없이 같은 순서를 밟았고, 비슷한 결말을 맞았다. 12년 전 기사들이 우리 일터에서 낯설지 않게 된 상황이다.
지난 4월 사측이 ‘단협 해지 통고’를 했을 때부터 노조는 사측의 속내를 짐작했지만, 최대한 자제하며 예고된 파국을 막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왔다. 사측의 압박이 겁나서가 아니다. 경영진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무단협으로 인한 우리 일터와 구성원의 혼란, 과거 SBS가 비판한 노동 탄압이 SBS에서 벌어질 때 겪게 될 시민사회의 신뢰 하락, 또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위해 SBS 이름으로 쓰게 될 앞으로의 기사들을 염려해서였다.
구성원의 삶, 시민사회의 신뢰, 언론사로서의 자격을 지키기 위해 노조만 고군분투하는 상황이 야속했지만, 무단협만은 막아 언론들이 비판한 노동 탄압 행위가 언론사 SBS에서 고스란히 재현되는 것만은 막으려 했다. 노조 집행부가 욕을 먹더라도, 힘들더라도,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수정안을 제시한 이유였다. 하지만 이 역시 사측의 거부로 소용없게 됐다.
■공정방송 = 핵심적 근로조건...이번엔 임명동의제 다음엔 또 다른 근로조건?
노조가 내부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임명동의 대상에서 사장을 제외한 건, 무단협을 막으면서도 임명동의제의 큰 틀이라도 유지해 제도의 취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임명동의제는 대주주로부터의 방송 독립, 방송 사유화를 막아 공정방송을 실현하는 최소한의 담보 장치이다. 지난 31년간 SBS 구성원들이 한 발 한 발 내딛어 만든 공정방송 제도, 쉽게 말해 우리의 근로조건 즉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를 두고 사측은 “근로조건과 무관한 임명동의제(21.10.06알림)”로 단협이 해지됐다며 “안타깝다”고 했지만, 이는 언론 종사자인 SBS 구성원들을 철저히 무시하는 발언일 뿐이다. ‘방송 공정성이 근로조건’이라는 건, 앞서 단협해지 통고로 무단협이 됐던 MBC 사건을 통해 법원에서 확립된 판례이다.
어렵게 판례까지 볼 필요도 없다. SBS 단협 5장 36조만 봐도 알 수 있다. ‘방송사 구성원의 핵심적 노동조건인 공정방송을 저해하는 내외의 어떠한 압력과 간섭을 배제하고 방송의 독립을 지킨다.’
이 단협은 노조 혼자 맺은 게 아니다. SBS 노사 합의의 산물이다. 그런데 지금 사측의 태도는 무엇인가. 언론사로서 절대 포기해선 안 되는 근로조건인 ‘공정방송 제도’를 없애기 위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단협 해지권’을 사용해 ‘무단협’까지 야기했다. 이번엔 ‘임명동의제 삭제’ 목적이었고, 다음엔 또 다른 ‘근로조건’을 없애기 위해 얼마든지 단협 해지권이 사용될 수 있는 일터, 우리 SBS가 처한 현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