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장 편지] 지금 침묵한다면 다시는 저항할 수 없습니다

하나. 우리는 SBS 소유와 경영의 완전하고 실질적이며 불가역적인 인적, 제도적 분리를   확립한다.

둘. 우리는 대주주와 경영진의 부당한 방송통제와 개입을 막아내고 방송 취재, 제작, 편성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완전히 확보한다.  

셋. 우리는 대주주의 사익 추구를 위한 착취적 지배구조를 배격하며 SBS의 사업 및 수익구조를 시청자 이익에 최우선으로 복무할 수 있도록 근본적이며, 지속 가능하도록 정상화한다

 

2017년 9월 6일 전국언론노조 SBS본부 대의원 일동이 만장일치로 결의한 “Reset!! SBS!!” 투쟁 결의문입니다. 전 세계 어느 언론에서도 볼 수 없을 대주주의 보도 개입과 방송 사유화의 폐단을 이번에는 확실히 끊어 내겠다는 구성원의 저항 의지가 담겼습니다. 그리고 그 결의가 임명동의제와 노조 추천 사외이사제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10.13 합의’를 탄생시켰습니다.

 4년이 지났습니다. 뭐가 남았습니까? 현재 사외이사는 3명 모두 사측 추천 인사로만 구성돼 있습니다. 감사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상법 개정안이 지난해 통과됐지만, 감사위원회는 전원 사측 추천 인사로만 이뤄졌습니다. 경영진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와 감시, 제대로 작동하고 있습니까? 희망퇴직, 스튜디오S 상장, 예능본부 이전 등 내 삶과 직결되는 우리 일터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습니까? 

 임명동의제는 어떻습니까? 대주주의 압력과 부당한 외부 개입으로부터 독립경영과 책임경영을 담보하기 위해 노사 합의로 도입된 제도는 대주주 심기에 거슬린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나와 우리 일터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배제됐습니다. 
 
 4년 전 우리의 노력이 물거품 된 게 끝이 아닙니다. 언론사 SBS에서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권리는 철저히 무시되고 부정당했습니다. 사측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단체협약마저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퇴행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SBS 31년사 초유의 무단협 사태를 만들어 노조 파괴에 나섰고 그것도 모자라 임금협상 운운하며 구성원 길들이기에 들어갔습니다. “업계 최고 대우”는 사측의 배려가 아닌, 높은 업무 강도에도 적은 인력으로 장시간 일하며 버텨내는 우리에 대한 정당한 보상입니다. 

 이미 많은 게 사라졌지만, 공정방송과 노동의 가치에 대한 구성원의 단단한 믿음, 나와 내 동료의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당하는 것에 대한 저항 의지, 옮고 그름을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지성, 불의에 분노할 수 있는 용기만은 4년 전 그대로라고 믿습니다.

 “저항을 유보했던 우리의 침묵을 통렬하게 반성한다. 더 이상의 침묵은 돌이키지 못할 해사행위이다.” 4년 전 대의원 투쟁 결의문 내용 중 일부입니다. 무단협 상황에서마저 침묵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다시는 저항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2021.10.20.

 전국언론노조SBS본부   정형택 본부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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