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장 편지] 결단의 시간이 가까웠습니다
무단협이라는 수치스러움과 구성원에 대한 미안함으로 근래 마음 편히 잔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26일 노조 창립일 밤은 흐뭇하게 잠들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단결된 의지로 하나로 뭉친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백 명의 조합원이 노조 점퍼를 입고 출근 투쟁에 함께했습니다. “되찾자! 단체협약!!” 신분증 케이스와 줄은 준비된 수량 700개가 동나 추가로 주문했습니다. 보도본부 기자들의 60% 가까이가 임명동의제 폐지와 단체협약 해지를 규탄하는 성명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우리는 이미 행동했고 조금씩 승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만의 싸움이 아님도 재차 확인했습니다. 목동사옥 1층 노조 농성장에서 열린 전국언론노조 전임 간부 연석회의에는 이틀 전 공지에도 15개 언론사 종사자 대표 등 언론자유와 방송독립을 위해 싸우는 30여 명의 동지가 함께했습니다. 같은 날 청와대 국정감사에서는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가 청와대 비서실장을 상대로 “이번 단체협약 해지는 대주주가 개입한 것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결국은 임명동의제를 이유로 노조 파괴를 하고 있다”며 청와대가 점검하라고 질의했습니다. 언론계와 시민사회, 정치권이 우리와 굳건히 연대하고 있습니다.
27일 3차 본교섭이 있었습니다. 사측은 스스로의 퇴행을 바로잡을 기회를 또다시 차버렸습니다. 사장은 물론 공정방송 최고 책임자에 대한 임명동의제를 없애라는 기존 입장만을 고수했습니다. 기존 단협을 우선 복원하고 임명동의제는 노조의 양보안을 토대로 추후 논의하자는 제안마저 거부했습니다.
협상의 의지가 없는 사측을 상대로 더 이상의 인내는 불필요해 보입니다. 무단협이라는 치욕적인 상황을 이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무책임한 일입니다. 사측은 이렇게 불성실한 태도로 협상을 이어가는 척하다가 11월 12일 TY홀딩스 주주총회가 끝나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인사를 단행할 겁니다. 무단협을 이용해 구성원 최소한의 동의도 없이 대주주 입맛에 맞는 사람을 SBS 사장에, 공정방송 최고 책임자에 앉힐 겁니다. 그렇게 우리의 근로조건은 이미 후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핵심적 근로조건인 임금 역시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사측은 29명의 희망퇴직 비용을 유보금이 아닌 영업비용으로 처리한다고 합니다. 1천 구성원이 미래 발전을 위해 대주주 투자가 필요하다고 외쳤을 때 유보금이 충분해 대주주 투자는 필요 없다던 사측이었습니다. 영업비용이 느는 만큼 영업이익은 감소하고 자연히 성과급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높은 업무 강도에서 적은 인력으로 장시간 일하며 버틴 우리의 정당한 몫이 그만큼 사라지는 겁니다. 11월 12일 임금협상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흘린 피땀의 정당한 대가를 반드시 지켜내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가치와 권리, 미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존경하는 SBS 구성원 여러분, 마음을 굳건히 다져주십시오. 결단의 시간이 가까웠습니다. 11월 1일 쟁의대책위원회에서 투쟁의 실행을 결정하겠습니다.
물러설 수 없는 싸움입니다. 여기서 물러나면 우리의 가치와 권리, 미래를 빼앗기게 됩니다. 빼앗기고도 저항하지 못한다면 상대는 언제든 또 빼앗으려 할 겁니다. 그때는 더 많은 걸 내 놓으라 요구할 겁니다. 지금 싸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시는 싸울 수 없습니다. 싸울 줄 모르는 우리에게 남는 건 굴종뿐입니다.
2021.10.28.
전국언론노조SBS본부 정형택 본부장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