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8일 단체협약 1차 협상 이후 약 10개월간 19번의 교섭을 진행했다. 그간의 협상은 양보와 인내, 두 단어로 압축된다. 노사 모두 구성원의 삶이 집약된 단체협약을 지켜야 했지만, 사측은 10차 협상 직후인 4월 2일 ‘SBS 31년사에 없던, 또 절대 해선 안 되는 단체협약 해지 통고’를 했다. ‘6개월 뒤 단협이 사라지는 게 싫으면, 그 전에 사측 안을 무조건 수용하라’는  횡포이자 겁박이었다. 우리 일터 SBS에서 MB시절에나 악용되던, 비정상적 삼류 기업이나 쓰던 ‘단협 해지권’이 행사된 게 부끄럽고 참혹했지만, 이 역시 참았다. 단협만은 지켜야 된다는 생각으로 인내하며 협상했다. 

 

사측은 1월부터 최근까지 단협 14장(사장·본부장급 임명동의제) 전면 삭제만을 주장해왔다. 임명동의제는 4년 전 대주주와 노사 합의로 도입한 제도로, 제도 자체에 문제가 없을뿐더러 SBS에 여전히 필요한 제도이다. 대주주로부터의 방송독립과 공정방송을 실현할 최소한의 장치라며 시민들에게 공식적으로 약속한 제도이기도 하다. 제도 도입 이후에도 SBS 경영에는 아무런 흔들림이 없었다. 사측은 콘텐츠 경쟁력은 높아졌고 흑자를 거뒀다며 자찬까지 하고 있다. 경영활동을 방해하는 것도, 정상적인 영리활동에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라는 걸 사측 입으로 증명했다. 한 마디로 삭제할 명분도, 실리도 없고,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그런데도 노조는 단협 해지 직전인 9월 29일 임명동의제 핵심인 사장을 대상에서 제외하는 대신, 공정방송 제도의 큰 틀은 유지하고자 국장급을 추가하는 양보안을 제시했다. 도입 취지를 후퇴시켰다는 안팎의 비판은 노조 집행부가 받더라도 단협만은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단협 사업장 SBS가 자초하게 될 신뢰 하락만은 막고 싶었다. 

하지만 사측에겐 애당초 ‘공정방송 의지 · SBS의 신뢰와 미래 · 구성원의 근로조건과 목소리’는 안중에도 없었다. 사측은 노조의 양보안마저 거부하고 무단협을 만들었다. 10월 27일 3차 본교섭에서도 마찬가지 태도였다. 사측은 ‘국장급 임명동의제 TF 논의’를 ‘최종 양보안’이라고 호칭했다. 도대체 무엇이 양보인가. 단협 14장(사장 본부장급 임명동의제) 전면 삭제엔 변함이 없고, ‘공정방송 최고책임자급 전체’가 임명동의제 대상에서 제외되는 건데 무엇이 양보란 말인가. 

사측은 우리의 노동권을 훼손해가며 무단협을 만들고선, 이젠 구성원의 주체성과 의식 수준마저 깔보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필수적인 근로조건인 ‘공정방송’을 사측이 허락해야만 가질 수 있는 시혜적 조치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언론사로서의 자격도, 구성원의 근로조건과 자부심마저 훼손해가며 사측이 얻으려 하는 건 무엇인가. 

이제 인사가 코앞에 다가왔다. 대주주가 공정방송 의지가 없는 사람, 구성원이 반대하는 사람, SBS 이익과 미래보단 대주주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을 ‘사장과 본부장’으로 앉혀도 임명동의제를 거치지 않을 것이 자명해졌다. 임명동의제를 없애려 무단협을 의도한 게 사측이고, 지금까지도 단협 14장 전면 삭제를 고수하는 것도 사측이기 때문이다.  

더는 우리의 노동환경을 훼손할 수 없다. 노조는 이성과 합리를 바탕으로 SBS의 안정을 위해 양보하며 협상했지만, 사측은 끝까지 이를 이용하기만 했다. ‘노사의 주장 불일치’, 즉 견해차는 올해 초부터 존재했지만, 이를 메우기 위한 사측의 노력은 없었다. 도리어 무단협 상황을 의도적으로 야기해 구성원들을 불안하게 만들어 놓고 이를 이용해 ‘강요와 강압’을 ‘양보’로 왜곡시켜가며 구성원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더는 노사의 자주적 협상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법에 있는 우리의 정당한 권리인 조정 신청을 노동위원회에 하려고 한다. 위원들이 참석하는 조정기일에서 우리의 노동환경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노사 협상 때처럼 조정 절차에서도 성실한 자세를 견지할 것이고, 우리의 권리와 우리 일터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전진할 것이다.

 

저작권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SBS 본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