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동의제 폐기’, ‘단체협약 해지’라는 사측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결정에도 최대한 인내했습니다. 노사 협상을 통한 자주적 해결이 우리 일터의 갈등 비용을 줄이고 구성원이 불편하지 않은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임명동의 대상에서 사장을 제외하는 무리한 양보도 했습니다. 제도의 취지를 후퇴시켰다는 안팎의 비판이 적지 않았지만, 우리 일터의 안녕과 구성원의 평안을 지킬 수만 있다면 제가 그 비난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각오했습니다.

하지만 협상에 임하는 사측의 태도를 보며 제 생각이 안일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측은 처음부터 협상을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단협까지 깨가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미 다 이뤘는데, 협상에 성실히 나설 까닭이 없었던 겁니다. 도리어 ‘임금협상’ 운운하며 더 빼앗지 못해 안달하고 있습니다. 구성원 최소한의 동의 없이 새로 사장과 공정방송 최고 책임자가 임명되면, 그들은 더 노골적으로 우리의 것을 빼앗아 대주주 배를 불리는 데 혈안이 될 겁니다. 

사측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는 건 우리가 하나로 뭉칠 수도, 싸울 수도 없다고 오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싸울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 폭력은 더 잔인한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부당과 불의에 인내하는 건 일터의 안녕을 지키는 게 아니라 당장 편하자고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어 우리의 미래를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더는 당하고만 있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존엄과 가치, 권리를 지키는 단체행동에 나서겠습니다.

그 시작으로 노동쟁의 조정 신청을 합니다. 조정 기간이 스스로의 퇴행을 바로잡고 파국을 막을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사측에게 분명히 밝힙니다. 더는 인내하지 않겠습니다. 더는 말로 끝내지 않겠습니다. 행동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단결된 행동으로 빼앗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겠습니다. 억지로 뒤틀려 하는 노사관계를 수평적이고 대등하게 고쳐놓겠습니다.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권리가 존중되는 곳으로 우리의 일터를 정상화시키겠습니다. 공정방송을 담보하는 최소한의 장치를 지켜내 추락한 우리의 자긍심을 되찾겠습니다.

존경하는 SBS 구성원 여러분, 어려운 고비마다 우리의 일터와 노동조합을 지켜온 건 바로 우리 스스로입니다. 이번 위기도 노조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막아냅시다. 우리 마음속 두려움부터 몰아냅시다. 단체행동은 법으로 보장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입니다. 우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권리를 행사하는 데 주저하지 맙시다. 우리 마음속 안일함을 떨쳐냅시다. 내 일 아니라고 여기다가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무기는 단결뿐입니다. 하나로 뭉쳐야만 지켜낼 수 있습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 

굳센 믿음과 옳은 실천, 끈질긴 집념으로 숨죽인 바다가 마침내 해일이 되는 것을 사측에게 똑똑히 보여줍시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그 길의 맨 앞에 제가 서겠습니다. 함께해 주십시오.

2021.11.03. 전국언론노조SBS본부 정형택 본부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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