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오늘의 SBS를 일군 건 구성원들의 피땀이었기에 종사자를 대표하는 자격으로 당당히 창사 기념식에 참석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단체협약을 해지해 SBS 31년사 초유의 무단협을 초래하고 공정방송과 노동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는 사측 행사에 들러리 설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우리의 가치와 권리는 쏙 뺀 채 사측이 말할 허울뿐인 SBS의 미래를, 발언 기회도 없이 가만히 앉아 듣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8일 긴급 쟁의대책위원회에서 불참을 결의했고, 대신 같은 날 열리는 TY홀딩스 주주총회장 앞에서 대주주 규탄 집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그룹 지배력 강화라는 대주주의 사적 이익을 위해 이뤄진 이번 지배구조 개편으로 SBS는 TY홀딩스 직접 지배 아래 놓이게 됐습니다. 방송독립과 공적책임 강화가 요구됐지만, 대주주와 사측은 정반대로 임명동의제를 없애고 단체협약을 해지해 직장 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공정방송을 훼손했습니다.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권리도 철저히 짓밟았습니다.
윤석민 회장은 무단협을 방조했습니다. 윤 회장은 지난 1월 20일 직접 서명한 10.13 합의 해지 통지문을 노조에 보냈습니다. 그 이후 사측은 4월 2일 단체협약 해지를 통고했고 10월 3일 SBS는 무단협이 됐습니다. 언론사주로서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은 물론, 지난 9월 TY홀딩스 최종 승인심사에서 부가된 SBS 공정성 제고를 위한 노력을 불이행하고 있습니다. 필요할 때만 소유경영 분리 핑계 대는 대주주에게 단체협약 복원과 공정방송 실현을 갈망하는 구성원의 목소리를 똑똑히 전달하겠습니다.
31살의 SBS, 자랑스럽습니까? 그렇다면 그건 온전히 우리 덕입니다. 더 좋은 방송을 위해, 더 나은 취재를 위해, 더 멋진 콘텐츠를 위해 열정과 젊음을 쏟아부은 나와 내 동료 덕분입니다. 권력과 자본에 맞서 방송 독립을 지켜온 우리의 저항의지 덕분입니다. 만약, 우리 일터가 부끄럽다면 그건 오롯이 사측 탓입니다. 권력에 붙어 공적책임을 저버리고 탐욕에 방송을 사유화해왔던 사측의 과오 탓입니다. 사측은 지금도 퇴행의 길을 걸으려 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SBS 구성원 여러분, 창사 기념식에 종사자 대표는 없지만 우리가 SBS의 주인임을 잊지 맙시다. 자긍심을 갖고 우리 일터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우리의 가치와 권리, 미래를 우리 손으로 지켜냅시다. 오는 15일(월)부터 시작하는 점심시간(11:40~12:00) 피케팅에 반드시 동참해주십시오. 바라는 내일을 맞으려면 오늘 행동해야 합니다.
빼앗기고도 저항하지 못한다면
빼앗은 자들은 더 잔인한 방식으로 더 많은 걸 가져가려 할 겁니다.
로동의 가치, 우리의 권리를 되찾는
데모(demo)를 똘똘 뭉쳐 시작합시다.
이길 수 있다는 굳센 믿음으로 옳은 실천을 이어갑시다.
- 2021.11.11. 전국언론노조SBS본부 정형택 본부장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