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7일) 정형택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장과 박정훈 SBS 사장이 날인한 최종 합의문은 주말 사이 물 밑 협상을 통해 이뤄진 잠정 합의문을 바탕으로 한다. 구성원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지난 2일 파업 결의대회 이후 이튿날 사측의 공개 알림에서 제시된 안보다 진일보한 내용이다.
■시사교양본부장, 편성본부장, A&T 보도영상본부장 ‘긴급평가제’ 도입
보도의 공정성, 제작의 자율성, 편성의 독립성 등 ‘공정방송’으로 압축되는 대원칙을 훼손한 공정방송 최고 책임자의 직무 수행 적합 여부를 판단하는 장치가 ‘긴급평가제’이다. 2017년 도입된 긴급평가제는 SBS보도준칙에 구체적 근거조항이 있다. 기존 긴급평가제는 보도 부문 최고책임자(보도본부장)에 대해서만 적용됐는데, 이번 합의를 통해 그 대상을 시사교양본부장, 편성본부장(SBS), 보도영상본부장(SBS A&T)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또, 당초 2년 임기 중 1회에 한해 긴급평가를 실시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었는데, 이를 연 1회로 확대했고, 해당 제도를 단체협약 5장(공정방송)에 구체적으로 명시하기로 했다.
긴급평가제는 각 본부 직원 과반수가 제도 작동을 요청하면, 회사는 2주 이내 해당 본부장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게 된다. 각 본부 재적 3분의 2가 부적합 평가를 하면, 사측은 해당 본부장을 인사조치 해야 한다. 기존 임명동의제의 완벽한 대체 장치가 될 수는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공정방송 최고책임자들에 대한 견제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
임명동의 대상에서 시사교양본부장, 편성본부장이 제외되는 대신 시사교양국장과 편성국장을 포함시키고, 이들에 대한 실권 보장을 노사 합의를 거쳐 명문화하기로 했다. 제작 자율성, 편성 독립성 관련 전권을 국장급이 가진다는 내용으로 사규 개정만이 아니라, 더 강력한 규범력을 지닌 단체협약에도 명시하기로 했다.
■SBS A&T 보도영상본부장 중간평가제 도입
사측은 SBS 사장, 보도·시사교양·편성본부장 등 공정방송 최고책임자들에 대한 임명동의제는 물론 SBS A&T 사장에 대한 임명동의제 역시 없앴다. 이후 한 몸인 SBS와 SBS A&T 구성원을 갈라치기 하려는 시도를 했다. 노조는 이런 시도를 단호히 배격했다.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라는 점 때문만이 아니다. SBS A&T 구성원들도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공정방송을 핵심적 근로조건으로 하는 방송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SBS A&T 사측은 단협에 적시된 공정방송을 추상적 선언으로 몰아가려 했지만, 이번 합의를 통해 다시는 이런 시도를 할 수 없도록 못 박았다. SBS A&T 단체협약 5장에 보도영상본부장에 대한 중간평가제를 명시하기로 했고, 앞서 말한 대로 긴급평가제 역시 5장에 새겨 넣기로 했다.
■노조 추천 사외이사 복원
노조 추천 사외이사는 2008년 1월 특별합의를 통해 도입됐다. 투명 경영, 대주주로부터의 독립 경영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였다. 사내 의사 결정, 경영활동을 견제 감시하면서 SBS 구성원의 이익을 지켜줄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2017년 10.13 합의를 통해 한층 더 강화된 노조 추천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됐지만, 지난해부터 사외이사 전체가 사측 인사로 채워져 있다.
이번 합의를 통해 노조 추천 사외이사는 2008년 합의서 수준으로 복원됐다. 노조에서 추천하는 사외이사 2명 중 1명을 사외이사로 선임하고, 노조 추천 사외이사가 감사위원회에 포함되도록 사측이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사측은 노조에서 이달 중 2명을 선별해 추천하면, 다음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로 선임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단체협약 5장 공정방송
임명동의제는 공정방송을 실현하는 최소한의 장치로 도입됐다는 게 명백하다. 도입 당시 사측도 인정하며 자찬했던 내용으로 정부기관에도 제출해 성실한 이행을 확약했지만, 무단협 사태를 겪으며 사측이 이를 부인해 갈등이 유발됐다.
앞으론 이 부분에 있어서 불필요한 논쟁, 소모적 감정싸움, 내부 갈등이 없도록 기존 단체협약 14장에 있던 임명동의제를 단체협약 5장에 새겨 넣기로 했다. 이동희 경영본부장 정승민 전략기획실장 남상석 보도본부장 3명이 최종 합의문 협상 자리에서 공개 확약한 것으로, 앞으로는 임명동의제를 둘러싼 소모적 논란은 종식하기로 했다.
이번 합의문이 구성원 전체를 만족시킬 수 없고, 기존 공정방송 제도보다 후퇴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는 마땅한 지적이며 노조는 이를 겸허히 수용한다. 다만, 앞으로 공정방송 제도는 더욱 정교해지고 촘촘해져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 노조도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