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SBS본부 조합원 여러분,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사측이 없애려 했던 임명동의제를 단체협약에서 지켜냈고, 후퇴한 부분은 긴급평가제와 중간평가제 도입·강화로 보완했습니다. 분명 기존 안보다는 퇴보했지만 ‘제도’로 공정방송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는 남겼습니다. 이제 그 제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일이 책임과 의무로 남았습니다.

우리는 공정방송과 노동의 가치를 지켜냈습니다. 90% 넘게 투표해 87% 가까이가 싸우겠다고 뜻을 모았습니다. 어느 언론사와 비교해도 압도적인 자랑스러운 수치입니다. 우리의 결의는 ‘자신만의 이익’을 위한 싸움이 아닌 시청자 권익과 우리 사회의 진보를 향한 응원 받는 투쟁이었습니다. 

우리는 뭉치면 할 수 있다는 걸 사측에 똑똑히 보였습니다. 직접 행동하지 않고도 결의만으로 정규 편성을 무너뜨렸습니다. 우리의 존엄과 가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언제든 일어설 수 있고, 그렇게 하나가 된다면 우리 일터를 멈춰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우리는 사측이 기도한 분열을 막았습니다. 사측은 SBS와 SBS A&T를 나누려 했고, 또 그 안에서 부문별로 갈라치기를 시도했지만, 우리의 단일대오는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함께하는 서로를 다독이고 격려하며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측은 방역을 핑계로 우리가 뭉치는 걸 막으려 했지만, 우리의 외침은 사측이 걸어 잠근 문밖을 넘어 하나의 함성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회유와 압박을 뚫고 차가운 로비 바닥에 같이 앉았던 수백 동료들의 모습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세운 민주 노조를 지켰습니다. 사측은 노조를 압박하고 심지어 없애려고도 했지만, 우리의 굳센 저항 의지를 꺾진 못했습니다. 무단협 기간 노조 깃발은 굳건히 로비 농성장을 지켰고 지금도 우리 가슴에서 힘차게 나부끼고 있습니다. 사측이 자주적 조합 활동을 보장하지 않겠다는 공문을 보냈을 때, 조합원으로 다시 복귀하겠다며 정년을 1년 남짓 앞둔 선배께서 노조 가입 신청서를 작성해오셨습니다. 사측의 불허로 신입 사원에 대한 노조 교육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노조에 가입하고 싶다는 새내기 동료의 문의가 있었습니다. 탄압 속에서 노조는 더 굳세졌습니다.

존경하는 SBS본부 조합원 여러분, 우리가 이룬 성과에 대해서는 평가하고 자랑스러워합시다. 이번 투쟁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그건 모두 조합원 여러분의 의지와 행동 덕분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오랜 투쟁으로 이뤄냈던 성과들을 온전히 되돌리지 못했습니다. 사장과 시사교양본부장, 편성본부장에 대한 임명동의 제도가 사라졌습니다. 노조 추천 사외이사 제도도 2008년 수준으로 퇴보했습니다. 
단체협약 해지권을 행사한 사측을 상대로 분명한 책임을 묻지 못했습니다. 우리 일터에서 두 달 넘게 무단협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SBS 31년사의 치욕이자, 방송노동자인 우리의 상처입니다. 

오늘의 실패를 기억합시다. 이번 투쟁에서 잃은 것이 있다면 그건 모두 제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조합원의 높은 열망과 투쟁 의지를 완벽한 승리로 이어가지 못한 저의 무능이자 나약함 탓입니다. 

함께 가야 오래, 멀리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때에 따라 걸음을 재촉하고 방향을 고집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믿고 함께 걸어주신 모든 조합원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그로 인해 불편하셨거나 상처 입으셨을 분께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존경하는 SBS본부 조합원 여러분, 우리는 다 함께 또 한걸음 내디뎠습니다. 강물은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바다를 향해 흐른다는 걸 똑똑히 보여줬습니다. 이제 바다에서 만났으니 하나의 큰 물줄기로 대해를 향해 나가야 합니다. 서로 간 갈등과 반목을 접고 노조 깃발 아래 하나로 뭉쳐 같이 갑시다. 고맙습니다. 
 

  2021.12.7
 - 전국언론노동조합SBS본부 정형택 본부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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