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협을 끝내며-김병길 사무처장 

저는 경력공채 입사자입니다. 이직을 결심하고 사직서를 제출하는 순간에도 직전 회사에는 노동조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매년 연례행사처럼 홀로 본부장실에 들어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내년도 임금을 ‘통보’ 받았습니다. 성과 대비 불합리한 임금에 문제제기하면 ‘본부에 할당된 임금재원이 한정되어 있고, 너의 임금을 올리자면 네 동료의 몫에서 가져와야 한다’는, 돌이켜보면 굉장히 야만적인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회사 규정에 없다는 이유로 가지급금 지급을 거부당했고, 본부 배차가 없다는 이유로 누적 1,000km가 넘는 거리를 혼자 운전하며 촬영을 다녀야했습니다. 이런 부조리들을 해결하겠다고 혼자서 타 부서들을 찾아다니며 읍소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직을 했고, 어느새 SBS를 ‘우리 회사’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노동조합 전임자, 소위 ‘내부자’로서 바라본 노사 관계는 일개 조합원 신분으로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좋지 못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회사는 4월에 이미 단체협약 해지를 통고했고,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0월 2일자로 단체협약은 해지되었습니다. 우리가 파업을 결의했을 때 회사는 그동안 유예하고 있던 단체협약의 조합활동 보장 조항 적용을 전면 중단하고, 완전히 새로운 단체협약을 처음부터 다시 쓰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임금협상에도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도 했죠. 

혹자는 우리가 파업을 할 만큼 단체협약이 중요한 것이냐, 일부 조항 정도는 양보해도 괜찮은 거 아니냐고 생각하실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단체협약은 우리가, 우리의 선배들이 회사생활을 하면서 겪어온 수많은 내홍들을 넘어서며 조금씩 진일보시켜 온 투쟁의 산물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며칠 간 혼자서 아등바등 불합리에 저항했던 지난 직장에서의 기억이 제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단체협약이 복원되지 않았다면 어쩌면 혼자만의 과도한 상상이 현실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부끄럽지만 사실 저 역시도 노동조합에 오기 전에는 한 번도 단체협약을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고, 왜 이러한 문구들이 생겼는지 따져 볼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단체협약 해지라는 무리수까지 둬 가면서 조항 삭제를 관철하려고 했던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역설적이게도 그만큼 우리뿐만 아니라 회사에게도 중요한 것이 단체협약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단체협약은 취업규칙보다, 사규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 (구태의연하게 표현하자면) 노사 모두에게 헌법과도 같은 존재니까요.

단체협약 해지라는 커다란 내홍을 겪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70여 일이 훌쩍 지나서야 겨우 단체협약이 복원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기회에 바로 그 단체협약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런 점에서 저를 비롯한 모든 분들이 어쩌면 지금 이 시점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단체협약서를 찬찬히 다시 읽어보기를 제안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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