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띄우는 편지입니다만 잘들 지내시는지 묻기가 저어한 요즘입니다. 만나는 조합원마다 "SBS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기우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기저에 도사리고 있는 이유가 차고 넘쳐 범람할 지경입니다. 

  최근 1~2년 사이 우리 뉴스는 철저히 외면 받고 있습니다. 이렇다 할 시사제작 콘텐츠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따져보면 경영진들이 정권 눈치를 보면서 알아서 기었던 기간과 일치합니다. 위축된 광고 시장에서 할 말 못하는 언론이 설 자리가 더욱 줄어드는 건 당연지사입니다. 어느 광고주가 시청자들이 외면하는 방송사에 광고를 주고 싶겠습니까. 비상경영을 선포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허리띠 졸라매고 있는 건 직원들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20여억 원 아꼈다고, 효과를 봤다며, 비상경영을 고수하고 있는 경영진을 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조합원들은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라고 하소연합니다. 이런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보는 것도 괴로운데, 이제는 대주주 한 마디에 제작비가 반년에 100억 원 이상 들어가는 일일드라마를 만들려고 했다니 기가 막힙니다. 특히 망할 게 뻔히 보이는 사업임에도 대주주에게 직언조차 못하는 경영진의 무능을 보면서 자괴감에 빠졌다는 조합원들도 많습니다.

  이쯤에서 '약속과 신뢰'를 생각하게 됩니다. 대주주는 지난 2007년부터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네 번이나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지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근래에 있던 사례 몇 가지만 짚어보겠습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과정에서 자회사를 동원해 2천억 원에 가까운 자금을 조달한 행위는 약속을 저버린 행위입니다. 노동조합이 행동하지 않고 있다고 그냥 넘어간 거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SBS와 조합원, 시장에 미칠 영향, 대주주의 사회적 책임 등을 고려해 참고 또 참고 있는 것뿐입니다. 조합은 이미 로펌 두 곳에서 법률 검토까지 마치고 언제든 행동할 준비를 마친 상태라는 것을 사측은 명심해야 합니다.

  윤석민 SBS문화재단 이사장이 목동 사옥의 임원 식당 등지에서 SBS 경영진, 팀장들과 돌아가며 식사를 한 것도 충분히 문제의 소지가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조합이 현장을 목격하고 바로 지적했듯이 ‘식사 자리’라고 쓰여 있지만 ‘경영 행위’로 읽힌 대목입니다. 윤 이사장 스스로도 ‘자두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는지 ‘식사 경영’을 멈춘 바 있습니다. 

  사실 이번 '일일드라마 사건' 직전에 편성사업본부와 제작본부의 갑작스러운 조직 개편도 대주주의 입김이 스며든 거라는 제보가 여러 곳에서 들어왔습니다. 최근 인도네시아에 수백억 원을 투자한 것도 대주주 일가가 관여한 것이라는 소리도 들려옵니다. 조합은 이 같은 일련의 행위에 ‘경영 불개입’이라는 약속을 위반한 행위가 있었는지 끝까지 파헤칠 생각입니다.

  노동조합이 지난 6월부터 만나온 백 명 안팎의 조합원들은 이구동성으로 ‘SBS의 위기는 과거부터 늘 대주주에서 시작됐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부르짖었습니다. 특히 그 위기를 가중시키는 여러 가지 사안들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들의 절규, 그냥 휘발시킬 수 없기에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조합원들과 만난’ 이야기를 노보에 담아내기로 했습니다. 사측이 구성원들의 입바른 소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주길 기대합니다. 막바지 여름, 건강 잘 지키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5.08.25.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 조기호 본부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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