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세 경영 개입’의 신호탄?

  지난 5월 목동 사옥에서 신성장동력발굴위원회(신성장위)의 첫 회의가 열렸다. SBS 미래 먹거리를 찾겠다는 취지로 지난 4월 25일 신성장위가 꾸려진 뒤 바로 개최된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 뜻밖의 인물이 참석했다. 윌리엄으로 알려진, SBS에 아무 보직도 없는 TY홀딩스 김형민 전무였다. 김 전무는 윤세영 창업회장의 손녀사위로 지난해 SBS 창사기념일을 맞아 목동 사옥을 공식 방문했을 때 카메라에 처음 포착됐다. 

윤세영 창업회장(왼쪽)과 함께 김형민 TY홀딩스 전무(오른쪽)가 지난해 11월 SBS 창사 34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윤세영 창업회장(왼쪽)과 함께 김형민 TY홀딩스 전무(오른쪽)가 지난해 11월 SBS 창사 34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김 전무는 상암동 사옥에서 열린 두 번째 회의에도 참석했다. 그런데 신성장위 면면을 보면 경영본부장부터 경영혁신팀장, 사업국장, 재무팀장 등 SBS의 주요 인사들이 포진하고 있다. SBS 핵심 인사들이 경영과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마다 대주주의 가족이 떡하니 앉아 있었던 셈이다. 과연 참석자들은 창업회장의 손녀사위가 버티고 있는 회의에서 할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만약 SBS를 위한 성장 동력이 TY홀딩스의 이익과 상충될 때도 그 엔진을 꺼뜨리지 않고 제대로 돌릴 수 있겠는가. 

  SBS의 미래는 SBS가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독립경영이건만 왜 창업회장 뒤에 아들회장이, 또 그 뒤에 손녀사위가 무한루프처럼 SBS에 ‘경영 개입’ 혹은 ‘경영 개입’으로 비춰지는 행동을 하는지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지주사 TY홀딩스 법인 등기를 보면, 지난해 3월 윤세영 창업회장과 함께 참업회장의 손녀사위인 미국 국적의 김형민(김윌리암형민) TY홀딩스 전무가 사내 등기이사가 됐다. 창업회장의 아들 윤석민 회장은 미등기 상태다.
지주사 TY홀딩스 법인 등기를 보면, 지난해 3월 윤세영 창업회장과 함께 참업회장의 손녀사위인 미국 국적의 김형민(김윌리암형민) TY홀딩스 전무가 사내 등기이사가 됐다. 창업회장의 아들 윤석민 회장은 미등기 상태다.

| “SBS는 퇴보가 아니라 퇴화 중…‘강비서’를 내쳐야”

  <조합원에 묻다>를 기획하면서 항상 던졌던 첫 질문은 ‘지금 SBS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였다. 조합원들의 대답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바로 ‘대주주’였다. 

  보도본부의 조합원 A씨는 “SBS는 대주주에 의해 잠식돼 있다”며 “특히 대주주가 인사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SBS가 외부에서 평가 받는 부분은 보도와 제작일 텐데, 보도의 경우 회장 비서 출신이거나 회장에 충성하는 사람 위주로 본부장과 국장직을 하사하니 그들은 더 나은 보도에 대한 고민보다 여의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데 더 신경을 쓴다”고 꼬집었다. 

  같은 본부의 조합원 B씨는 “옛날에는 정권이 바뀌면 그 정권과 친한 인사들을 선발해 대외적인 방어책이라도 모색했는데, 몇 년 전부터는 아예 대주주가 ‘나만 바라보라’는 식의 인사를 하고 있는 모양새”라고 진단했다. 이어 “SBS 뉴스가 현재 시청률 0으로 수렴하는 상황에서 코드 인사를 진짜 확 바꾸고 근본적으로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더는 미래가 없는 조직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편성사업본부 조합원 C씨의 분석은 매서웠다. “SBS는 퇴보가 아니라 퇴화 중”이라는 것이다. C씨는 “다들 AI 비서를 두는 시대에 SBS는 창사 이후부터 여전히 ‘강비서’를 쓰고 있지 않느냐”며 “강원도, 비서실, 서울대 출신의 ‘강비서’를 해고하고 진짜 실력 있는 인재를 쓰지 않는 한 SBS는 멸종될지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태영건설 살리려고 보도는 구부러지고 제작은 휘어져”

  한때 SBS는 태영건설, 더 정확하게는 대주주 일가의 쌈짓돈이자 열린 지갑이었다. 지금처럼 격벽을 설치해 명목상으로나마 태영건설과 거리를 두기까지 노동조합과 구성원들은 숱한 고난의 역사를 겪었다. 그러나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으로 그 거리는 다시 순식간에 좁혀졌다. 

  경영본부 조합원 D씨는 태영건설의 위기가 이미 SBS에 전이됐다고 진단하며 조합이 행동에 나서지 않는 부분을 비판했다. D씨는 “태영건설을 반드시 살리겠다는 대주주의 의지가 가신들뿐만 아니라 SBS 미디어그룹 전반에 N차 감염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윤석열 정권 하에서 SBS가 언론사로서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데에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크게 영향을 미쳤는데, 이로 인해 사측 인사들만 아니라 일반 직원들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는 식으로 뇌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경영본부의 다른 조합원 E씨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윤 정권에 대해 기자와 피디들이 제대로 비판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결국 태영건설 살리자고 SBS의 보도가 구부러지고, 제작이 휘어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 “대주주 공 떼서 봐야”…소유•경영 분리 약속 파기가 근본적 문제

  물론 조합원 중에는 윤세영 창업회장의 공은 따로 떼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제작본부  조합원 F씨는 “창업회장이 무에서 유를 만든 건 인정해야 한다”며 “옆 동네 유진그룹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양아치가 대주주로 있는 것보다는 그나마 훨씬 낫지 않느냐”고 조심스레 말했다.      

  누차 말했지만 조합 역시 대주주의 위상을 충분히 존중한다. 그들의 역할을 부인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대주주가 그동안 네 차례나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선언해놓고 틈날 때마다 약속을 깨뜨리려는 데서 모든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 “대주주 눈치 보는 리더십 무능으로 내부 활기 상실” 

  경영본부의 G 조합원은 “SBS는 내부적으로 활기를 상실했다고 본다. 이는 성공 경험이 점점 희박해지면서 도전보다는 안주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그건 대주주 눈치를 심하게 보는 리더십의 무능으로 해석되는데 보통은 보도를 살리든 제작을 살리든 아니면 사업 부서를 살리든 하면서 자극 경영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밸런스만 맞추려 한다. 그러니 아무도 신나서 일하려는 사람이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목동 시대를 연 21년 전, SBS는 경쟁사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인프라와 워크플로우로 무장했다. 최고의 스튜디오와 최신식 디지털 장비는 타사에겐 ‘넘사벽’이었고, 업계 최고 대우의 인재 경영은 SBS를 빠르게 성장시켰다. 하지만 지금은 번쩍거리는 사옥 외관과 달리 방송 장비들은 낡아가고 있고, 구성원과 구성원의 마인드도 노쇠해져 가고 있다. SBS는 새 시대를 향해 도약할 것인가, 아니면 주저앉을 것인가. 타오르는 태양처럼 발광체가 될 것인가 밤에 떠 있는 달처럼 단순한 반사체에 머물 것인가. <조합원에 묻다> 2부에서는 SBS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 더 깊숙이 들여다 볼 예정이다. 

저작권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SBS 본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